신라로부터 우명산성을 빼앗다
(
608년
04월
)
〔19년(608)〕여름 4월에 신라 우명산성(牛鳴山城)註 001을 쳐서 빼앗았다
우명산성(牛鳴山城) : 그 위치와 관련해‘우명(牛鳴)’과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9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고적조(古跡條)에 나오는 철원술(鐵垣戌)이 공통적으로 ‘쇠울’을 훈차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함경남도 안변으로 비정하는 견해(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544쪽)가 있는 반면,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북한강으로 파악하고 강원도 춘천으로 비정하는 견해(서영일, 37쪽; 박종서, 127쪽), 북한산주(北漢山州) 관내와 비열성(比列城, 함경남도 안변군)을 신라가 차지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광주산맥 이남의 경기 동북부 내지 춘천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장창은, 2014, 307쪽).
〈참고문헌〉
장창은, 2014, 『고구려 남방 진출사』, 경인문화사
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장창은, 2020, 『삼국시대 전쟁과 국경』, 온샘
서영일, 2001, 「6~7世紀 高句麗 南境 考察」, 『고구려연구』 11
박종서, 2010, 「고구려 낭비성 위치에 대한 검토」, 『국학연구』 17, 한국국학진흥원
〈참고문헌〉
장창은, 2014, 『고구려 남방 진출사』, 경인문화사
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장창은, 2020, 『삼국시대 전쟁과 국경』, 온샘
서영일, 2001, 「6~7世紀 高句麗 南境 考察」, 『고구려연구』 11
박종서, 2010, 「고구려 낭비성 위치에 대한 검토」, 『국학연구』 17, 한국국학진흥원
註) 001
우명산성(牛鳴山城) : 그 위치와 관련해‘우명(牛鳴)’과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9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고적조(古跡條)에 나오는 철원술(鐵垣戌)이 공통적으로 ‘쇠울’을 훈차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함경남도 안변으로 비정하는 견해(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544쪽)가 있는 반면,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북한강으로 파악하고 강원도 춘천으로 비정하는 견해(서영일, 37쪽; 박종서, 127쪽), 북한산주(北漢山州) 관내와 비열성(比列城, 함경남도 안변군)을 신라가 차지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광주산맥 이남의 경기 동북부 내지 춘천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장창은, 2014, 307쪽).
〈참고문헌〉
장창은, 2014, 『고구려 남방 진출사』, 경인문화사
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장창은, 2020, 『삼국시대 전쟁과 국경』, 온샘
서영일, 2001, 「6~7世紀 高句麗 南境 考察」, 『고구려연구』 11
박종서, 2010, 「고구려 낭비성 위치에 대한 검토」, 『국학연구』 17, 한국국학진흥원
〈참고문헌〉
장창은, 2014, 『고구려 남방 진출사』, 경인문화사
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장창은, 2020, 『삼국시대 전쟁과 국경』, 온샘
서영일, 2001, 「6~7世紀 高句麗 南境 考察」, 『고구려연구』 11
박종서, 2010, 「고구려 낭비성 위치에 대한 검토」, 『국학연구』 17,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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