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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에 명하여 쌀농사를 짓도록 하다 ( 33년 02월 )
〔6년(33)〕 2월에 영을 내려 나라 남쪽의 주(州)·군(郡)註 001에 처음으로 논[稻田]을 만들게 하였다.註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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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1
주(州)·군(郡) : 본래 중국의 지방통치조직의 명칭이다. 군은 중국의 진나라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등장하였고, 한 대에는 약 1500개의 현을 100개 군으로 재편성하였다 후한(後漢) 말 중앙은 지방관과 호족의 결탁이나 권력 남용을 감찰할 목적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여 지방의 분권화를 예방하고자 하였으나, 주자사의 행정감독이 강화됨에 따라 주가 군의 상급 행정단위로 발전하였다. 백제의 지방통치조직의 명칭은 「광개토왕릉비」에 보이는 성·촌과 『양서(梁書)』 권54 백제전에 보이는 담로(檐魯), 사비도읍기의 방-군-성 등이다. 반면 신라는 통일 이전에는 주-군-성(촌)제였다가 통일 이후 전국을 주-군-현으로 편제하였다. 따라서 본 기사의 주·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백제지역을 주-군-현제로 재편한 이후의 사실이 소급 부회된 표현으로 보인다(盧重國, 1988, 『百濟政治史硏究』, 一潮閣, 247~250쪽).바로가기
註) 002
처음으로 논[稻田]을 만들게 하였다 : 백제는 진펄인 ‘택(澤)’에 도전(稻田), 즉 논을 개발하였다. 진펄인 ‘택’은 자연적으로 물이 고여 있는 소택지로서 배수가 잘 안 되어 지하 수위가 높고 유기물의 분해가 좋지 않은 지연 저습지를 의미한다. 백제 초기에는 자연 저습지가 논으로 개간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으며, 소택지 주변의 수전경영은 주로 소(沼- 늪)·지류의 하천물이나 배후 습지의 지하수를 간단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통해 급수하는 방법을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양기석, 2005, 『백제의 경제생활』, 주류성, 179~180쪽). 무안 양장리유적에서는 4~5세기경의 저습지와 인공수로가 확인된 바 있다. 저습지에서는 농경에 관련된 시설물로 보이는 호안시설이나 방책시설물로 보이는 목제구조물과 함께 다량의 목제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저습지와 주거지군을 경계짓는 수로는 모두 3열이 노출되었는데, 인공적으로 호를 판 후, 한 쪽 경사면을 따라 말목을 세워 이용하였으며, 수로 내부에는 후대에 퇴적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석기·목기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함몰되어 있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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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농업>농업정책>권농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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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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