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475) 가을 9월에 고구려왕 거련(巨璉)이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와서 왕도인 한성(漢城)을 포위하였다.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못하니 고구려 사람들이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협공하고, 또한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성문을 불태웠다.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두려워하여 나가서 항복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왕은 군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나니 고구려 사람이 추격하여 왕을 해쳤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몰래 백제를 도모하려고 백제에서 첩자 노릇을 할 만한 사람을 구하였다. 이때 승려 도림(道琳)이 응하여 말하기를, “어리석은 소승이 아직 도(道)는 알지 못하지만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생각은 있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신을 어리석다 여기지 않으시고 지목하여 시키신다면 왕명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몰래 보내 백제를 속이게 하였다. 이에 도림은 거짓으로 죄를 짓고 도망가 백제로 들어갔다. 당시 백제왕 근개루(近蓋婁)는 장기와 바둑[博奕]을 좋아하였다. 도림이 대궐 문에 이르러 아뢰기를, “신이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자못 신묘한 경지에 들었으니 바라건대 대왕의 곁에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불러들여 바둑을 두어보니 과연 국수(國手)였다. 마침내 그를 높여 상객(上客)으로 삼고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하였다.
도림이 하루는 〔왕을〕 모시고 앉아서 조용히 말하기를, “신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 왕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매우 두텁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한 가지 기술만 바쳤을 뿐 아직 털끝만한 이익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바라건대 한 말씀 올리려 하오나 왕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말해 보시오. 만일 나라에 이롭다면 이는 선생에게서 바라는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도림이 말하기를,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모두 산과 언덕, 강과 바다입니다. 이는 하늘이 베풀어주신 험한 요새이지 사람이 만든 형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방의 이웃 나라들이 감히 엿볼 마음을 갖지 못하고 단지 받들어 섬기기를 원할 뿐이며 〔다른〕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마땅히 숭고한 위세와 많은 업적으로써 남의 이목을 두렵게 해야 하건만, 성곽이 수리되지 않고 궁실도 고치지 않았으며 선왕의 해골이 맨땅에 임시로 묻혀있고 백성의 집들은 강물에 자주 허물어지니 신은 대왕께서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맞소! 내가 장차 그리 하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나라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그 안에 궁궐과 누각과 전망대와 건물을 지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욱리하(郁里河)에서 큰 돌을 가져다 덧널[槨]을 만들어 아버지의 뼈를 묻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았는데 사성(蛇城)의 동쪽에서부터 숭산(崇山)의 북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창고가 텅 비고 백성들이 곤궁해지니 나라의 위태로움이 알을 쌓아놓은 것보다 심하였다.
이에 도림이 도망쳐 돌아가 아뢰니 장수왕이 기뻐하며 장차 백제를 정벌하려고 장수들에게 군사를 주었다. 근개루가 그 말을 듣고 아들 문주(文周)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어 이 지경이 되었다. 백성이 쇠잔하고 군사가 약하니 비록 위태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해 힘써 싸우겠느냐. 나는 마땅히 사직(社稷)에서 죽겠지만, 네가 이곳에서 함께 죽는 것은 이로울 게 없다. 어찌 난을 피하여 나라의 계통[國系]을 잇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문주는 이에 목협만치(木劦滿致)․조미걸취(祖彌桀取) 목협과 조미는 모두 복성(複姓)인데, 『수서(隋書)』에서는 목협(木劦)을 두 개의 성이라고 하였다.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다.와 함께 남쪽으로 갔다.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대로(對盧)제우(齊于)·재증걸루(再曾桀婁)·고이만년(古尒萬年) 재증과 고이는 모두 두 글자로 된 성이다.등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북성(北城)을 공격하여 7일 만에 빼앗고 옮겨서 남성(南城)을 공격하니 성 안에서는 위태롭고 두려워하였다. 왕이 나가서 도망하자 고구려 장수인 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한 다음에 왕의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는 그 죄를 나열한 다음 포박하여 아차성(阿且城) 아래로 보내 죽였다.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