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하여 말한다. 신라 고사(古事)에 이르기를, “하늘이 금궤를 내렸으므로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괴상해서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신(臣)이 역사서를 편찬하려고 보니 그 전승이 오래되어 그 말을 빼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또 들으니,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라고 했으며 신라의 국자박사(國子博士) 설인선(薛因宣)이 지은 김유신의 비와 박거물(朴居勿)이 짓고 요극일(姚克一)이 쓴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에 보인다., 고구려 또한 고신씨(高辛氏)의 후예이기에 성이 고씨(高氏)이다.”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재기(載記)에 보인다. 옛 기록[古史]에 이르기를,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진(秦)나라·한(漢)나라의 난리 때 중국 사람이 많이 해동(海東)으로 도망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곧 세 나라의 조상이 어찌 옛 성인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그 나라를 향유함이 길었으나, 백제의 마지막에 이르러 행하는 일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 많고, 또 대대로 신라와 원수가 되어 고구려와 연합하고 화목함으로써 침략하며, 이익과 편의에 따라 신라의 중요한 성(城)과 큰 진(鎭)을 나누어 차지하는 것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른바 어진 사람과 친하고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나라의 보배라는 말과 달랐다. 이에 당나라 천자가 두 번이나 조서를 내려서 그 원한을 풀라고 하였는데, 겉으로 따르는 척하면서 속으로 어겨 큰 나라에 죄를 지었으니, 그 멸망은 또한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