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 설화에 대한 《고기》 기록
《고기(古記)》註 255에 이르기를, “신문왕(神女王註 256)註 257 때 동해(東海) 가운데 홀연히 한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형상이 거북 머리와 같았다. 그 위에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베어다가 적(笛)을 만들어, 이름을 만파식(萬波息)註 258이라고 하였다.” 한다. 비록 이런 말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이미 악지(樂志) 앞에서 신라고기(新羅古記) 및 라고기(羅古記)가 나온 것으로 보아 신라고기의 별칭일 가능성도 있는데, 아마도 《古記》를 축약하여 여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5쪽).
정덕본에는 ‘神女王’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와 동일한 기사가 남겨진 《삼국유사》 萬波息笛조에는 신문왕 때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인정하여 “神文王”으로 교감 주해한다.
신라 31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681~691년이다. 휘(諱)는 정명(政明), 혹은 명지(明之)라고도 한다. 문무왕(文武王)의 장자(長子).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 혹은 慈義王后). 비(妃)는 소판(蘇判) 김흠돌의 딸 김씨(金氏)인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었고 이후 김흠돌의 난(亂)으로 죄를 물어 궁에서 쫓겨났다. 신문왕(神文王)은 즉위 초 귀족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여 국왕의 권위를 강화했으며, 당제(唐制)를 적극 수용하여 통일신라의 국가제도를 완비하였다. 지방 통치조직인 9주(州) 5소경(小京)이나, 군제(軍制)인 9서당(九誓幢)도 이때 시행되었다. 녹읍을 폐지하고 매년 세조(稅租)를 받아 중앙집권화를 꾀했다(신라본기, 제8 신문왕 및 역주 표영관).
적(笛)을 불면 적병(敵兵)이 물러가고 병(病)이 낳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올때는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정(平靜)하여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한다.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 역시 신문왕 시기로 써놓은 것으로 보아 만파식(萬波息)은 만파식적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만파식적(萬波息笛) 및 역주 김동윤).
註) 255
이미 악지(樂志) 앞에서 신라고기(新羅古記) 및 라고기(羅古記)가 나온 것으로 보아 신라고기의 별칭일 가능성도 있는데, 아마도 《古記》를 축약하여 여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5쪽).
註) 256
정덕본에는 ‘神女王’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와 동일한 기사가 남겨진 《삼국유사》 萬波息笛조에는 신문왕 때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인정하여 “神文王”으로 교감 주해한다.
註) 257
신라 31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681~691년이다. 휘(諱)는 정명(政明), 혹은 명지(明之)라고도 한다. 문무왕(文武王)의 장자(長子).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 혹은 慈義王后). 비(妃)는 소판(蘇判) 김흠돌의 딸 김씨(金氏)인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었고 이후 김흠돌의 난(亂)으로 죄를 물어 궁에서 쫓겨났다. 신문왕(神文王)은 즉위 초 귀족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여 국왕의 권위를 강화했으며, 당제(唐制)를 적극 수용하여 통일신라의 국가제도를 완비하였다. 지방 통치조직인 9주(州) 5소경(小京)이나, 군제(軍制)인 9서당(九誓幢)도 이때 시행되었다. 녹읍을 폐지하고 매년 세조(稅租)를 받아 중앙집권화를 꾀했다(신라본기, 제8 신문왕 및 역주 표영관).
註) 258
적(笛)을 불면 적병(敵兵)이 물러가고 병(病)이 낳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올때는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정(平靜)하여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한다.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 역시 신문왕 시기로 써놓은 것으로 보아 만파식(萬波息)은 만파식적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만파식적(萬波息笛) 및 역주 김동윤).
주제분류
- 문화>예술>음악>악기
- 정치>신이>생물>식물
색인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