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예천군(醴泉郡)註 081은 본래 수주군(水酒郡)註 082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보주(甫州)註 083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넷이다.
예천군(醴泉郡):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예천읍.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주군(水酒郡)을 예천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태조 23년(940)]에 보주(甫州)로 고쳤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 본서의 편찬 후인 명종 2년(1172)에는 현령(縣令)을 파견하여 주현이 되면서 이름을 기양현(基陽縣)이라고 하였으며, 신종 7년(1204)에는 지방관을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시켜 다시 보주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기양현). 조선 태종 13년(1413)에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쳤고 16년에 다시 다시 신라 때 이름인 예천군(醴泉郡)으로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예천군).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이며, 여기에는 신라 때 유적으로 흑응산성, 대심리고분군 등이 있다.
수주군(水酒郡): 신라 예천군(醴泉郡, 현 경상북도 예천군)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45 열전5 박제상전에는 수주촌(水酒村)의 이름이 보이며, 「단양 적성 신라비(丹陽 赤城 新羅碑)」에 보이는 ‘물사벌성(勿思伐城)’을 동일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全德在, 2009, 「관산성전투에 대한 새로운 고찰」, 『新羅文化』 34, 57~58쪽).
영안현(永安縣)註 084은 본래 하지현(下枝縣)註 085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풍산현(豊山縣)註 086이다.
영안현(永安縣):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豊山邑).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하지현(下枝縣)을 영안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6년(923)에 고을 사람 원봉(元逢)이 귀순한 공이 있다 하여 순주(順州)로 승격시켰다가 13년(930) 견훤에게 함락되었으므로 다시 하지현으로 강등시켰다. 그 후[태조 23년(940)] 다시 풍산현(豐山縣 혹은 豊山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지만 다시 안동부에 소속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풍산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이며, 여기에는 신라 때 유적으로 풍악산성, 가곡리산성 등이 있다.
안인현(安仁縣)註 087은 본래 난산현(蘭山縣)註 088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안인현(安仁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난산현(蘭山縣)을 안인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나 있지 않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를 편찬하는 단계에 이미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예천군 고적 안인폐현(安仁廢縣)조에도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 예천 고읍조에 예천 서북 40리 갈평창(葛平倉) 근처라고 하였으니 현재의 문경시 동로면 남단의 수평리·인곡리 일대에 해당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7쪽).
가유현(嘉猷縣)註 089은 본래 근품현(近品縣)註 090건품현(巾品縣)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산양현(山陽縣)註 091이다.
가유현(嘉猷縣):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山陽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근품현(近品縣)을 가유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산양현(山陽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지만 명종 2년(1172)에 없애고 다시 상주목에 소속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산양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8 경상도 상주목). 그 위치는 상주목 북쪽 63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현리이며, 여기에는 근암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근품현(近品縣): 신라 가유현(嘉猷縣, 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건품현(巾品縣), 근암현(近巖縣)이라고도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산양현).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조에 ‘근암성(近嵒城)’이 나오는데 바로 근품현에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은정현(殷正縣)註 092은 본래 적아현(赤牙縣)註 093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은풍현(殷豊縣)註 094이다.
은정현(殷正縣):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殷豐面) 은산리(殷山里).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아현(赤牙縣)을 은정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은풍현(殷豊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은풍현). 공양왕(恭讓王)이 기주(基州,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은풍(殷豐)을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기천현감(基川縣監)으로 고쳤는데, 뒤에 문종(文宗)의 태(胎)를 은풍현(殷豐縣)에 안치하게 되자 마침내 두 현(縣)의 이름을 따서 풍기(豐基)로 고치고 군(郡)으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풍기군). 그 위치는 풍기군 서남쪽 37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2016년 하리면에서 은풍면으로 변경) 은산리이며, 부로산성이 관련된 성으로 추정된다.
註) 081
예천군(醴泉郡):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예천읍.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주군(水酒郡)을 예천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태조 23년(940)]에 보주(甫州)로 고쳤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 본서의 편찬 후인 명종 2년(1172)에는 현령(縣令)을 파견하여 주현이 되면서 이름을 기양현(基陽縣)이라고 하였으며, 신종 7년(1204)에는 지방관을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시켜 다시 보주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기양현). 조선 태종 13년(1413)에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쳤고 16년에 다시 다시 신라 때 이름인 예천군(醴泉郡)으로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예천군).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이며, 여기에는 신라 때 유적으로 흑응산성, 대심리고분군 등이 있다.
註) 082
수주군(水酒郡): 신라 예천군(醴泉郡, 현 경상북도 예천군)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45 열전5 박제상전에는 수주촌(水酒村)의 이름이 보이며, 「단양 적성 신라비(丹陽 赤城 新羅碑)」에 보이는 ‘물사벌성(勿思伐城)’을 동일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全德在, 2009, 「관산성전투에 대한 새로운 고찰」, 『新羅文化』 34, 57~58쪽).
註) 084
영안현(永安縣):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豊山邑).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하지현(下枝縣)을 영안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6년(923)에 고을 사람 원봉(元逢)이 귀순한 공이 있다 하여 순주(順州)로 승격시켰다가 13년(930) 견훤에게 함락되었으므로 다시 하지현으로 강등시켰다. 그 후[태조 23년(940)] 다시 풍산현(豐山縣 혹은 豊山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지만 다시 안동부에 소속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풍산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이며, 여기에는 신라 때 유적으로 풍악산성, 가곡리산성 등이 있다.
註) 087
안인현(安仁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난산현(蘭山縣)을 안인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나 있지 않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를 편찬하는 단계에 이미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예천군 고적 안인폐현(安仁廢縣)조에도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 예천 고읍조에 예천 서북 40리 갈평창(葛平倉) 근처라고 하였으니 현재의 문경시 동로면 남단의 수평리·인곡리 일대에 해당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7쪽).
註) 089
가유현(嘉猷縣):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山陽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근품현(近品縣)을 가유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산양현(山陽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지만 명종 2년(1172)에 없애고 다시 상주목에 소속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산양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8 경상도 상주목). 그 위치는 상주목 북쪽 63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현리이며, 여기에는 근암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註) 090
근품현(近品縣): 신라 가유현(嘉猷縣, 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건품현(巾品縣), 근암현(近巖縣)이라고도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산양현).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조에 ‘근암성(近嵒城)’이 나오는데 바로 근품현에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註) 092
은정현(殷正縣):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殷豐面) 은산리(殷山里).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아현(赤牙縣)을 은정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은풍현(殷豊縣)으로 바꿨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은풍현). 공양왕(恭讓王)이 기주(基州,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은풍(殷豐)을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기천현감(基川縣監)으로 고쳤는데, 뒤에 문종(文宗)의 태(胎)를 은풍현(殷豐縣)에 안치하게 되자 마침내 두 현(縣)의 이름을 따서 풍기(豐基)로 고치고 군(郡)으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풍기군). 그 위치는 풍기군 서남쪽 37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2016년 하리면에서 은풍면으로 변경) 은산리이며, 부로산성이 관련된 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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