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선군
숭선군(嵩善郡)註 118은 본래 일선군(一善郡)註 119으로 진평왕(眞平王) 36년(614)에 일선주(一善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註 120 신문왕(神文王) 7년(687)에 주(州)를 폐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선주(善州)註 121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숭선군(嵩善郡):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일선군(一善郡)을 숭선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선주(善州)라고 하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1143)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一善縣)이 되었고, 뒤에 지주사(知州事)를 파견하여 다시 선주(善州)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일선현). 조선 태종 때 선산군(善山郡)으로 고쳤다가 곧 도호부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선산도호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의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선산도호부 고적조에 “옛 일선[古一善]이 냉산(冷山) 서쪽, 여차니진(余次尼津) 동쪽 1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체로 고려시대 이전에 선산의 중심지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의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해당하며, 여기에는 낙산리고분군과 낙산리 삼층석탑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일선군(一善郡): 신라 숭선군(嵩善郡,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4 신라본기4 법흥왕 15년 조행불법(肇行佛法)조에 “처음 눌지왕 때 승려[沙門]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으로 왔는데, 일선군 사람인 모례(毛禮)가 집 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편히 머물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眞平王) …… 설치하였다: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평왕 36년(614) 봄 2월조에는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여 일길찬(一吉飡) 일부(日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사벌주는 감문주(甘文州)의 오류로 보인다.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8년(557)조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여 사찬(沙飡) 기종(起宗)을 군주(軍主)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문주를 폐하고 일선주를 설치했다고 하는 것은 감문에 있던 정(停), 즉 군주(軍主)가 이끄는 군단의 영(營)을 일선으로 옮겨 설치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효령현(孝靈縣)註 122은 본래 모혜현(芼兮縣)註 123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효령현(孝靈縣):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孝令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모혜현(芼兮縣)을 효령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 일선현(一善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공양왕 때 군위현(軍威縣, 현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감무(監務)를 파견하면서 결국 군위현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효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군위현). 그 위치는 군위현 서남쪽 35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군위군 효령면에 해당한다. 지금 중구리에 있는 면사무소는 1914년에 정해진 것이고, 조선총독부 1:50,000 지형도를 보면 현 장기리와 장군리 사이에 (구)효령이라는 표기가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군위군 사묘조에 김유신사(金庾信祠)라고 기록되어 있는 장군당(효령사)와 고곡리고분군 등이 있다.
이동혜현(尒同兮縣)註 124은 지금[고려]은 알 수 없다.
이동혜현(尒同兮縣): 신라 숭선군(嵩善郡,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속한 현으로 현재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본서 권6 신라본기6 문무왕 7년(667) 10월조에 ‘이동혜촌주(尒同兮村主)’가 나온다. 지명의 형식으로 보아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으로 판단되는데, 원자료에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이 누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동혜현은 고려 이전에 폐지되었을 가능성과 고려 군현으로 연결되었지만 그 계승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치 비정은 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는데, 먼저 고려 해평현(海平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정구복 외, 2012, 175쪽). 이 경우 고일선과 너무 인접해 있다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에 따라 고려 의흥현(義興縣)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박성현, 2019, 17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박성현, 2019 「신라 문소군, 숭선군의 구조와 군현 편성 원리」, 『한국학논집』 74
〈참고문헌〉
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박성현, 2019 「신라 문소군, 숭선군의 구조와 군현 편성 원리」, 『한국학논집』 74
군위현(軍威縣)註 125은 본래 노동멱현(奴同覓縣)註 126여두멱(如豆覓)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군위현(軍威縣):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軍威邑).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노동멱현(奴同覓縣)을 군위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 일선현(一善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공양왕 때 군위현(軍威縣, 현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감무(監務)를 파견하여 주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효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군위현). 그 중심지는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서부리에 해당한다.
註) 118
숭선군(嵩善郡):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일선군(一善郡)을 숭선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선주(善州)라고 하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1143)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一善縣)이 되었고, 뒤에 지주사(知州事)를 파견하여 다시 선주(善州)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일선현). 조선 태종 때 선산군(善山郡)으로 고쳤다가 곧 도호부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선산도호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의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선산도호부 고적조에 “옛 일선[古一善]이 냉산(冷山) 서쪽, 여차니진(余次尼津) 동쪽 1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체로 고려시대 이전에 선산의 중심지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의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해당하며, 여기에는 낙산리고분군과 낙산리 삼층석탑 등이 위치하고 있다.
註) 119
일선군(一善郡): 신라 숭선군(嵩善郡,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4 신라본기4 법흥왕 15년 조행불법(肇行佛法)조에 “처음 눌지왕 때 승려[沙門]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으로 왔는데, 일선군 사람인 모례(毛禮)가 집 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편히 머물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註) 120
진평왕(眞平王) …… 설치하였다: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평왕 36년(614) 봄 2월조에는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여 일길찬(一吉飡) 일부(日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사벌주는 감문주(甘文州)의 오류로 보인다.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8년(557)조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여 사찬(沙飡) 기종(起宗)을 군주(軍主)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문주를 폐하고 일선주를 설치했다고 하는 것은 감문에 있던 정(停), 즉 군주(軍主)가 이끄는 군단의 영(營)을 일선으로 옮겨 설치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註) 121
註) 122
효령현(孝靈縣):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孝令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모혜현(芼兮縣)을 효령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 일선현(一善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공양왕 때 군위현(軍威縣, 현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감무(監務)를 파견하면서 결국 군위현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효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군위현). 그 위치는 군위현 서남쪽 35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군위군 효령면에 해당한다. 지금 중구리에 있는 면사무소는 1914년에 정해진 것이고, 조선총독부 1:50,000 지형도를 보면 현 장기리와 장군리 사이에 (구)효령이라는 표기가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군위군 사묘조에 김유신사(金庾信祠)라고 기록되어 있는 장군당(효령사)와 고곡리고분군 등이 있다.
註) 123
註) 124
이동혜현(尒同兮縣): 신라 숭선군(嵩善郡,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속한 현으로 현재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본서 권6 신라본기6 문무왕 7년(667) 10월조에 ‘이동혜촌주(尒同兮村主)’가 나온다. 지명의 형식으로 보아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으로 판단되는데, 원자료에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이 누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동혜현은 고려 이전에 폐지되었을 가능성과 고려 군현으로 연결되었지만 그 계승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치 비정은 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는데, 먼저 고려 해평현(海平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정구복 외, 2012, 175쪽). 이 경우 고일선과 너무 인접해 있다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에 따라 고려 의흥현(義興縣)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박성현, 2019, 17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박성현, 2019 「신라 문소군, 숭선군의 구조와 군현 편성 원리」, 『한국학논집』 74
〈참고문헌〉
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박성현, 2019 「신라 문소군, 숭선군의 구조와 군현 편성 원리」, 『한국학논집』 74
註) 125
군위현(軍威縣):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軍威邑).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노동멱현(奴同覓縣)을 군위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인종 21년 일선현(一善縣, 현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일대)에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일선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공양왕 때 군위현(軍威縣, 현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감무(監務)를 파견하여 주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상주목 효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군위현). 그 중심지는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서부리에 해당한다.
주제분류
- 정치>행정>군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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