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고령군(高靈郡)註 400은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註 401이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註 402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에서 도설지왕(道設智王)註 403까지 모두 16대 520년 이어졌던 곳이다.註 404 진흥왕(眞興王)이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伽倻郡)註 405으로 하였다.註 406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둘이다.
고령군(高靈郡):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고령읍.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대가야군(大伽倻郡)을 고령군으로 고쳤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경산부(京山府, 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5년(1175)에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13년(1413)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경산부 고령군;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고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그 중심지는 현재의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 일대이다.
대가야국(大伽倻國): 신라 고령군(高靈郡, 현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에 있었던 국(國). 현재 학계에서는 보통 대가야국(大加耶國)으로 표기한다. 고령 세력은 원래 반로국(半路國)(『삼국지』 동이전 한조) 혹은 반파국(伴跛國)(『일본서기』 계체기)을 칭하면서 변한(弁韓)의 한 후진 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5세기 후반에 들어 가라국(加羅國), 대가야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479년 남중국과 통교(『남제서』 동남이열전 가라)하는 한편 영토 팽창을 꾀하여 소백산맥 너머 남원, 장수까지 그 세력을 뻗쳤다. 이 시기 대가야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다.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대가야국(大加耶國)의 시조(始祖).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가야산신(伽倻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金官國王) 뇌질청예(惱窒靑裔) 2인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이 곧 이진아시왕의 별칭이라고 하였다.
도설지왕(道設智王): 대가야국(大加耶國)의 마지막 왕.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다른 사서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단양 적성 신라비」(550년경)에 나오는 도설지(噵設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561)에 나오는 도설지(都設智),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탈지이질금(脫知爾叱今)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월광태자(月光太子)를 대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과 동일인으로 본 견해가 있다(金泰植, 1996, 「大加耶의 世系와 道設智」, 『震檀學報』 81).
모두 …… 이어졌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522년 신라에게 청혼한 이뇌왕(異腦王)이 뇌질주일(惱窒朱日)의 8세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562년 멸망 당시의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이 그 16세손이라고 하면 40년 동안에 8세대가 지난 것이 된다. 또한 대가야국(大加耶國)의 역년(歷年)이 520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562년에 멸망한 대가야의 개시 연대를 서기 42년으로 간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기 42년은 후한(後漢) 건무(建武) 18년으로, 이는 곧 『삼국유사』 권1 기이2 가락국기에 나오는 김해 가락국(駕洛國)의 개국 연대를 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보아 대가야국의 세대 수 및 역년에 대한 이 기록은 그 신빙성이 의문시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22~223쪽).
진흥왕(眞興王)이 …… 하였다: 대가야국의 멸망은 신라 진흥왕 23년(562)의 일로,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23년(562) 9월조 및 『일본서기』 권19 흠명 23년(562)조에 기사가 전한다.
야로현(冶爐縣)註 407은 본래 적화현(赤火縣)註 408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야로현(冶爐縣): 현재의 경상북도 합천군 야로면(冶爐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화현(赤火縣)을 야로현으로 고쳤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합주(陜州, 현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5년(1175)에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13년(1413)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합주 야로현;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합천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합천군). 『신증동국여지승람』 합천군 속현조에 야로현이 군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일대이다.
신복현(新復縣)註 409은 본래 가시혜현(加尸兮縣)註 410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상세치 않다.
신복현(新復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牛谷面)에 비정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23쪽).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가시혜현(加尸兮縣)을 신복현으로 고쳤다. 본서 지리지의 편찬 당시에 이미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 초에 행정 구역이 폐지된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고적조에 “현의 서쪽 10리 되는 곳의 땅 이름에 가서곡(加西谷)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혜(尸兮)가 변하여 서(西)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라고 하였다. 『대동지지』 권9 고령 고읍조에 신복(新復)은 고령 남쪽 30리에 있고 가시성(加尸城)이라고도 한다고 하였고, 또한 고령 서쪽 10리에 있는 가서곡(加西谷)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본서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8년(661) 4월19일조에 가시혜진(加尸兮津)이 나오므로 물가, 특히 낙동강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동지지』의 남쪽 30리가 옳은 것으로 보이며, 『대동여지도』에서 확인했을 때 현재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일대에 비정할 수 있다.
가시혜현(加尸兮縣): 신라 신복현(新復縣, 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8년(661) 4월19일조에 가시혜진(加尸兮津)이 나오며, 본서 권41 열전1 김유신전에도 가혜성(加兮城) 및 가혜진(加兮津)이 나온다.
註) 400
고령군(高靈郡):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고령읍.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대가야군(大伽倻郡)을 고령군으로 고쳤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경산부(京山府, 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5년(1175)에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13년(1413)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경산부 고령군;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고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그 중심지는 현재의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 일대이다.
註) 401
대가야국(大伽倻國): 신라 고령군(高靈郡, 현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에 있었던 국(國). 현재 학계에서는 보통 대가야국(大加耶國)으로 표기한다. 고령 세력은 원래 반로국(半路國)(『삼국지』 동이전 한조) 혹은 반파국(伴跛國)(『일본서기』 계체기)을 칭하면서 변한(弁韓)의 한 후진 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5세기 후반에 들어 가라국(加羅國), 대가야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479년 남중국과 통교(『남제서』 동남이열전 가라)하는 한편 영토 팽창을 꾀하여 소백산맥 너머 남원, 장수까지 그 세력을 뻗쳤다. 이 시기 대가야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다.
註) 402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대가야국(大加耶國)의 시조(始祖).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가야산신(伽倻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金官國王) 뇌질청예(惱窒靑裔) 2인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이 곧 이진아시왕의 별칭이라고 하였다.
註) 403
도설지왕(道設智王): 대가야국(大加耶國)의 마지막 왕.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다른 사서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단양 적성 신라비」(550년경)에 나오는 도설지(噵設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561)에 나오는 도설지(都設智),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탈지이질금(脫知爾叱今)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월광태자(月光太子)를 대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과 동일인으로 본 견해가 있다(金泰植, 1996, 「大加耶의 世系와 道設智」, 『震檀學報』 81).
註) 404
모두 …… 이어졌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522년 신라에게 청혼한 이뇌왕(異腦王)이 뇌질주일(惱窒朱日)의 8세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562년 멸망 당시의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이 그 16세손이라고 하면 40년 동안에 8세대가 지난 것이 된다. 또한 대가야국(大加耶國)의 역년(歷年)이 520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562년에 멸망한 대가야의 개시 연대를 서기 42년으로 간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기 42년은 후한(後漢) 건무(建武) 18년으로, 이는 곧 『삼국유사』 권1 기이2 가락국기에 나오는 김해 가락국(駕洛國)의 개국 연대를 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보아 대가야국의 세대 수 및 역년에 대한 이 기록은 그 신빙성이 의문시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22~223쪽).
註) 406
진흥왕(眞興王)이 …… 하였다: 대가야국의 멸망은 신라 진흥왕 23년(562)의 일로,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23년(562) 9월조 및 『일본서기』 권19 흠명 23년(562)조에 기사가 전한다.
註) 407
야로현(冶爐縣): 현재의 경상북도 합천군 야로면(冶爐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화현(赤火縣)을 야로현으로 고쳤다. 고려 이후에도 그대로 불렀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합주(陜州, 현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5년(1175)에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13년(1413)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합주 야로현;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합천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합천군). 『신증동국여지승람』 합천군 속현조에 야로현이 군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일대이다.
註) 409
신복현(新復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牛谷面)에 비정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23쪽).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가시혜현(加尸兮縣)을 신복현으로 고쳤다. 본서 지리지의 편찬 당시에 이미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 초에 행정 구역이 폐지된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고적조에 “현의 서쪽 10리 되는 곳의 땅 이름에 가서곡(加西谷)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혜(尸兮)가 변하여 서(西)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라고 하였다. 『대동지지』 권9 고령 고읍조에 신복(新復)은 고령 남쪽 30리에 있고 가시성(加尸城)이라고도 한다고 하였고, 또한 고령 서쪽 10리에 있는 가서곡(加西谷)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본서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8년(661) 4월19일조에 가시혜진(加尸兮津)이 나오므로 물가, 특히 낙동강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동지지』의 남쪽 30리가 옳은 것으로 보이며, 『대동여지도』에서 확인했을 때 현재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일대에 비정할 수 있다.
註) 410
가시혜현(加尸兮縣): 신라 신복현(新復縣, 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의 경덕왕 때 고치기 전 이름. 본서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8년(661) 4월19일조에 가시혜진(加尸兮津)이 나오며, 본서 권41 열전1 김유신전에도 가혜성(加兮城) 및 가혜진(加兮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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