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군
결성군(潔城郡)註 093은 본래 백제(百濟)의 결기군(結己郡)註 09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2개이다.
결성군(潔城郡):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0쪽). 고려 현종 1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읍)의 속군이 되었으며, 명종 2년(1171)에 결성군(結城郡)으로 이름을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결성군).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으며, 영조가 보령(保寧, 보령시 주포면)에 합했다가 뒤에 복구하여 현(縣)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결성현).
신읍현(新邑縣)註 095은 본래 백제(百濟)의 신촌현(新村縣)註 096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보령현(保寧縣)註 097이다.
신읍현(新邑縣): 현재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고려 초에 보령현(保寧縣)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다. 예종 원년(1106)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보령현),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효종 3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고종 때 군(郡)으로 개편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보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보령현(保寧縣) 산천(山川)조에 지을현(地乙峴), 즉 질고개가 현 동쪽 5리에 있고 대천(大川)이 현 남쪽 24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조선시대의 보령현 치소는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보령읍성에 해당한다.
신촌현(新村縣): 신라 웅주 결성군(潔城郡) 신읍현(新邑縣, 보령시 주포면)의 백제 때 지명인데, 다른 기록에는 사촌(沙村)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이곳을 도독부 직속의 산곤현(散昆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다. 신촌현의 치소는 현재의 충남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봉당성(鳳堂城, 古南山城)과 주포면 보령리 동쪽 진당산(鎭堂山)에 있는 당산성(唐山城) 두 곳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보령현 고적조에 따르면 당산성(唐山城)은 둘레 1,810척의 석축산성이다. 6세기 전반까지는 봉당성이었다가, 그 이후에 당산성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成周鐸, 1985, 「百濟 新村縣 治所의 位置 比定에 관한 硏究」, 『百濟論叢』 1, 145쪽).
신량현(新良縣)註 098은 본래 백제(百濟)의 사시량현(沙尸良縣)註 099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여양현(黎陽縣)註 100이다.
신량현(新良縣):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고려 초에 여양현(黎陽縣)으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군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여양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홍주목 고적조에 따르면 여양폐현(驪陽廢縣)은 홍주 남쪽 37리에 있었으며, ‘여(驪)’ 자는 ‘여(黎)’ 자로도 쓴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 해당한다.
사시량현(沙尸良縣): 신라 웅주 결성군(潔城郡) 신량현(新良縣, 홍성군 장곡면)의 백제 때 지명인데, 다른 기록에는 사라(沙羅)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7년(474)조에 사시성(沙尸城) 축성 기사가 나오고, 본서 권6 신라본기 문무왕 원년(661) 9월 27일 기사에는 사시산군 태수(沙尸山郡太守) 철천(哲川) 등이 나오는데, 그 사시성 및 사시산군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신라 소지마립간 때에 이곳이 신라가 영유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성립되기 어렵다. 신라군이 우술성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 청원 문의로 비정되는 일모산군 태수가 참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인근의 옥천지역으로 추정된다.
註) 093
결성군(潔城郡):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0쪽). 고려 현종 1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읍)의 속군이 되었으며, 명종 2년(1171)에 결성군(結城郡)으로 이름을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결성군).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으며, 영조가 보령(保寧, 보령시 주포면)에 합했다가 뒤에 복구하여 현(縣)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결성현).
註) 095
신읍현(新邑縣): 현재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고려 초에 보령현(保寧縣)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다. 예종 원년(1106)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보령현),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효종 3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고종 때 군(郡)으로 개편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보령현). 『신증동국여지승람』 보령현(保寧縣) 산천(山川)조에 지을현(地乙峴), 즉 질고개가 현 동쪽 5리에 있고 대천(大川)이 현 남쪽 24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조선시대의 보령현 치소는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보령읍성에 해당한다.
註) 096
신촌현(新村縣): 신라 웅주 결성군(潔城郡) 신읍현(新邑縣, 보령시 주포면)의 백제 때 지명인데, 다른 기록에는 사촌(沙村)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이곳을 도독부 직속의 산곤현(散昆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다. 신촌현의 치소는 현재의 충남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봉당성(鳳堂城, 古南山城)과 주포면 보령리 동쪽 진당산(鎭堂山)에 있는 당산성(唐山城) 두 곳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보령현 고적조에 따르면 당산성(唐山城)은 둘레 1,810척의 석축산성이다. 6세기 전반까지는 봉당성이었다가, 그 이후에 당산성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成周鐸, 1985, 「百濟 新村縣 治所의 位置 比定에 관한 硏究」, 『百濟論叢』 1, 145쪽).
註) 098
신량현(新良縣):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고려 초에 여양현(黎陽縣)으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군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홍주 여양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홍주목 고적조에 따르면 여양폐현(驪陽廢縣)은 홍주 남쪽 37리에 있었으며, ‘여(驪)’ 자는 ‘여(黎)’ 자로도 쓴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 해당한다.
註) 099
사시량현(沙尸良縣): 신라 웅주 결성군(潔城郡) 신량현(新良縣, 홍성군 장곡면)의 백제 때 지명인데, 다른 기록에는 사라(沙羅)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7년(474)조에 사시성(沙尸城) 축성 기사가 나오고, 본서 권6 신라본기 문무왕 원년(661) 9월 27일 기사에는 사시산군 태수(沙尸山郡太守) 철천(哲川) 등이 나오는데, 그 사시성 및 사시산군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1쪽), 신라 소지마립간 때에 이곳이 신라가 영유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성립되기 어렵다. 신라군이 우술성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 청원 문의로 비정되는 일모산군 태수가 참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인근의 옥천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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