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주의 주・군・현
무진주(武珍州)註 498〔또는 노지(奴只)註 499라고도 한다.〕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註 500, 복룡현(伏龍縣)註 501, 굴지현(屈支縣)註 502, 분차군(分嵯郡)註 503〔또는 부사(夫沙)註 504라고도 한다.〕, 조조례현(助助禮縣)註 505, 동로현(冬老縣)註 506, 두힐현(豆肹縣)註 507, 비사현(比史縣)註 508, 복홀군(伏註 509忽郡)註 510, 마사량현(馬斯良縣)註 511, 계천현(季川縣)註 512, 오차현(烏次縣)註 513,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註 514, 추자혜군(秋子兮郡)註 515, 과지현(菓支縣)註 516〔또는 과혜(菓兮)註 517라고도 한다.〕, 율지현(栗支縣)註 518, 월나군(月奈郡)註 519,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註 520, 아로곡현(阿老谷縣)註 521, 고미현(古彌縣)註 522, 고시이현(古尸伊縣)註 523,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註 524, 소비혜현(所非兮縣)註 525, 무시이군(武尸伊郡)註 526, 상로현(上老縣)註 527,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註 528, 송미지현(松彌知縣)註 529, 감평군(欿平郡)註 530〔또는 무평(武平)註 531이라고도 한다.〕, 원촌현(猿村縣)註 532, 마로현(馬老縣)註 533, 돌산현(突山縣)註 534, 욕내군(欲乃郡)註 535, 둔지현(遁支縣)註 536, 구차례현(仇次禮縣)註 537, 두부지현(豆夫只縣)註 538,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註 539〔또는 죽수부리(竹樹夫里),註 540 또는 인부리(仁夫里)註 541라고도 한다.〕, 파부리군(波夫里郡)註 542, 잉리아현(仍利阿縣)註 543〔또는 해빈(海濱)註 544이라고도 한다.〕, 발라군(發羅郡)註 545, 두힐현(豆肹縣)註 546, 실어산현(實於山縣)註 547, 수천현(水川縣)註 548〔또는 수입이(水入伊)註 549라고도 한다.〕, 도무군(道武郡)註 550, 고서이현(古西伊縣)註 551, 동음현(冬音縣)註 552, 새금현(塞琴縣)註 553〔또는 착빈(捉濱)註 554이라고도 한다.〕, 황술현(黃述縣)註 555, 물아혜군(勿阿兮郡)註 556, 굴내현(屈乃縣)註 557, 다지현(多只縣)註 558, 도계현(道暩註 559縣)註 560〔또는 음해(陰海)註 561라고도 한다.〕, 인진도군(因珍島郡)註 562〔바다 섬이다.〕, 도산현(徒山縣)註 563〔바다의 섬이다. 한편 원산(猿山)註 564이라고도 이른다.〕, 매구리현(買仇里縣)註 565〔바다의 섬이다.〕, 아차산군(阿次山郡)註 566, 갈초현(葛草縣)註 567〔또는 하로(何老),註 568 또는 곡야(谷野)註 569라고도 한다.〕, 고록지현(古祿只縣)註 570〔또는 개요(開要)註 571라고도 한다.〕, 거지산현(居知山縣)註 572〔또는 안릉(安陵)註 573이라고도 한다.〕. 나이군(奈已註 574郡)註 575이다.
무진주(武珍州): 신라 무주(武州)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일대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0쪽). 다른 기록에는 노지(奴只)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무주’ ‘무진주’ 항목 참조.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신라 무주 현웅현(玄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0쪽). 본서 권40 직관지 하 무관조에 신라 10정(十停)의 하나로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이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남평군’ 항목 참조.
복룡현(伏龍縣): 신라 무주 용산현(龍山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복룡동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쪽). 다른 기록에는 배룡(盃龍)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복룡현’ 항목 참조.
굴지현(屈支縣): 신라 무주 기양현(祁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창평현’ 항목 참조.
분차군(分嵯郡):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332쪽). 다른 기록에는 부사(夫沙) 또는 분사(分沙)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분차군’ ‘낙안군’ 항목 참조.
조조례현(助助禮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충렬현(忠烈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남양현’ 항목 참조.
동로현(冬老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조양현(兆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조양현’ 항목 참조.
두힐현(豆肹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강원현(薑原縣, 고흥군 두원면)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나주시 다시면)의 백제 때 지명도 두힐현(豆肹縣)이어서, 백제 두힐현(豆肹縣)은 두 곳이 있었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두원현’ 항목 참조.
비사현(比史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백주현(栢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태강현’ 항목 참조.
복홀군(伏忽郡):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보성군’ 항목 참조.
마사량현(馬斯良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대로현(代勞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마사량현’ ‘회령현’ 항목 참조.
계천현(季川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계수현(季水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장택현’ 항목 참조.
오차현(烏次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오아현(烏兒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정안현’ 항목 참조.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고마미지현’ ‘수령현’ 항목 참조.
추자혜군(秋子兮郡):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추자혜군’ ‘담양군’ 항목 참조.
과지현(菓支縣):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옥과현(玉菓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다른 기록에는 과혜(菓兮) 또는 과지(果支) 또는 과혜(果兮)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옥과현’ 항목 참조.
율지현(栗支縣):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율원현(栗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원율현’ 항목 참조.
월나군(月奈郡): 신라 무주 영암군(靈巖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영암군조의 ‘영암군’ ‘월나군’ 항목 참조.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반남군’ ‘반나부리현’ 항목 참조.
아로곡현(阿老谷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 야로현(野老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아로곡현’ ‘안로현’ 항목 참조.
고미현(古彌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 곤미현(昆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쪽). 다른 기록에는 고미현(枯彌縣)이라고도 하였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곤미현’ 항목 참조.
고시이현(古尸伊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갑성군’ ‘장성군’ 항목 참조.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 진원현(珍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33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진원현’ ‘구사진혜현’ 항목 참조.
소비혜현(所非兮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 삼계현(森溪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쪽). 다른 기록에는 소을부(所乙夫)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삼계현’ 항목 참조.
무시이군(武尸伊郡):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무시이군’ ‘영광군’ 항목 참조.
상로현(上老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장사현(長沙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장사현’ ‘상로현’ 항목 참조.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고창현(高敞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고창현’ ‘무량부리현’ 항목 참조.
송미지현(松彌知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무송현(茂松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무송현’ 항목 참조.
감평군(欿平郡):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다른 기록에는 무평(武平) 또는 사평(沙平)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승주’ 항목 참조.
원촌현(猿村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해읍현(海邑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여수현’ 항목 참조.
마로현(馬老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희양현(晞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마로현’ ‘광양현’ 항목 참조.
돌산현(突山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영산현(廬山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천군 돌산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다른 기록에는 돌산향(突山鄕)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여산현’ ‘돌산현’ 항목 참조.
욕내군(欲乃郡):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곡성읍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곡성군’ 항목 참조.
둔지현(遁支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부유현(富有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부유현’ 항목 참조.
구차례현(仇次禮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구례현(求禮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구례현’ 항목 참조.
두부지현(豆夫只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동복현(同福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3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동복현’ 항목 참조.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다른 기록에는 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능성군’ ‘이릉부리군’ 항목 참조.
파부리군(波夫里郡):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 부리현(富里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복성현’ 항목 참조.
잉리아현(仍利阿縣):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 여읍현(汝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다른 기록에는 여빈(汝濱) 또는 해빈(海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화순현’ 항목 참조.
발라군(發羅郡):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3쪽). 다른 기록에는 통의(通義)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발라군’ ‘나주목’ 항목 참조.
두힐현(豆肹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3쪽). 최근 나주시 다시면의 복암리 유적에서 '두힐사(豆肹舍)'명 토기가 출토되었다(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0, 『羅州 伏岩里遺蹟Ⅰ』, 5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회진현’ ‘두힐현’ 항목 참조.
실어산현(實於山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철야현(鐵冶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철야현’ ‘실어산현’ 항목 참조.
수천현(水川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여황현(艅艎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다른 기록에는 수입이(水入伊)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여황현’ ‘수천현’ 항목 참조.
도무군(道武郡):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도강군’ 항목 참조.
고서이현(古西伊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고안현(固安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죽산현’ 항목 참조.
동음현(冬音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탐진현(耽津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탐진현’ 항목 참조.
새금현(塞琴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침명현(浸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다른 기록에는 투빈(投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새금현’ ‘해남현’ 항목 참조.
황술현(黃述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황원현(黃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황원현’ 항목 참조.
물아혜군(勿阿兮郡):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무안군’ ‘물아혜군’ 항목 참조.
굴내현(屈乃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함풍현(咸豊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함풍현’ ‘굴내현’ 항목 참조.
다지현(多只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다기현(多岐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34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다기현’ ‘다지현’ ‘모평현’ 항목 참조.
도제현(道際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해제현(海際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다른 기록에는 음해(陰海) 또는 대봉(大峯)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해제현’ ‘도제현’ 항목 참조.
인진도군(因珍島郡):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진도현(珍島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진도현’ 항목 참조.
도산현(徒山縣):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다른 기록에는 원산(猿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뇌산군조의 ‘뇌산군’ ‘도산현’ ‘가흥현’ 항목 참조.
매구리현(買仇里縣):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 첨탐현(瞻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뇌산군조의 ‘임회현’ 항목 참조.
아차산군(阿次山郡): 백제 아차산현(阿次山縣)의 다른 호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압해군’ 항목 참조.
갈초현(葛草縣): 백제 아로현(阿老縣)의 다른 호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남창리 일대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갈도현’ ‘아로현’ ‘육창현’ 항목 참조.
고록지현(古祿只縣): 신라 무주 압해군(壓海郡) 염해현(鹽海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다른 기록에는 개요(開要)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임치현’ 항목 참조.
거지산현(居知山縣): 신라 무주 압해군(壓海郡) 안파현(安波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다른 기록에는 굴지산현(屈知山縣) 또는 안릉(安陵)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장산현’ 항목 참조.
나이군(奈已郡): 신라 삭주(朔州) 나령군(奈靈郡)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현재의 경북 영주시에 비정된다(李丙燾 역주, 1977, 567쪽). 날이군(捺已郡)이라고도 한다. 나이군은 지리지3 신라편 무주에서는 보이지 않고, 지리지2 신라조에서는 나이군이 삭주에 소속된 ‘나령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나령군은 백제의 나이군인데 파사왕이 빼앗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군이 파사왕때 신라 영역이 되었다는 기사가 본서 신라본기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 등 후대의 지리서에는 본서의 ‘本百濟奈已郡’을 ‘本高句麗奈已郡’으로 고쳐 읽고 있으나 별다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조에는 “順安縣本高句麗柰已郡, 新羅婆娑王, 取之, 景德王, 改爲柰靈郡”으로 되어 있고,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영천군조에서도 “榮川郡, 本高句麗 柰巳郡, 新羅 婆娑王取之, 景德王改爲柰靈郡 … 本朝太宗癸巳, 例改爲榮川郡”이라 하여 나이군을 고구려 땅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이군(奈已郡)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지 편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가 먼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본서 편자가 백제본기에서 백제 멸망 시 37군(郡)이라는 자료를 보고 이 군수(郡數)에 맞추기 위하여 고구려 지명으로 가야 할 나이군을 백제 지명에 더하였다고 보는 견해(井上秀雄, 1974, 89~91쪽), 본서 권35 지리 제2 삭주조의 ‘柰靈郡本百濟奈已郡’이라는 기사는 편찬자의 착오인데 백제 지리지의 편찬자는 이를 보고 나이군이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인하여 무진주조의 말미에 붙인 것이라는 견해(노중국, 1995, 168~170쪽)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경상북도 북단에 있는 나이군이 무진주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서 찬자의 두찬으로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7, 38쪽). 이와 달리 실제 백제의 영유와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상정하는 견해가 있다. 지리지의 나기군(奈己郡)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에게 점유되었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기군은 경북 영주 지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고려사』 지리지 순안현의 연혁에는 나기군이 고구려의 영역으로 수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기군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영역 지배의 추이를 반영한 백제측의 전승 자료에 의거한 것이며. 나기군이 웅주, 전주, 무주의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어서 백제편 말미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이강래, 1996, 26~39쪽).
최근에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삼국의 분속은 주(州) 단위로 일괄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군의 사례는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데, 백제조 맨 끝에 수록된 것은 백제로 귀속되는 3주를 모두 정리한 뒤 삭주 소속이면서 백제로 분속된 나이군을 추록(追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윤경진, 2012a, 52~53쪽).
〈참고문헌〉
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노중국, 1995, 「三國史記의 百濟 地理關係 記事 檢討」, 『三國史記의 原典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강래, 1996, 「新羅奈已郡考」, 『신라문화』 13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윤경진, 2012a, 「『三國史記』 地理志 수록 군현의 三國 分屬」, 『한국사학보』 47
井上秀雄, 1974, 「三國史記 地理志の史料批判」,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나이군(奈已郡)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지 편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가 먼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본서 편자가 백제본기에서 백제 멸망 시 37군(郡)이라는 자료를 보고 이 군수(郡數)에 맞추기 위하여 고구려 지명으로 가야 할 나이군을 백제 지명에 더하였다고 보는 견해(井上秀雄, 1974, 89~91쪽), 본서 권35 지리 제2 삭주조의 ‘柰靈郡本百濟奈已郡’이라는 기사는 편찬자의 착오인데 백제 지리지의 편찬자는 이를 보고 나이군이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인하여 무진주조의 말미에 붙인 것이라는 견해(노중국, 1995, 168~170쪽)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경상북도 북단에 있는 나이군이 무진주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서 찬자의 두찬으로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7, 38쪽). 이와 달리 실제 백제의 영유와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상정하는 견해가 있다. 지리지의 나기군(奈己郡)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에게 점유되었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기군은 경북 영주 지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고려사』 지리지 순안현의 연혁에는 나기군이 고구려의 영역으로 수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기군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영역 지배의 추이를 반영한 백제측의 전승 자료에 의거한 것이며. 나기군이 웅주, 전주, 무주의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어서 백제편 말미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이강래, 1996, 26~39쪽).
최근에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삼국의 분속은 주(州) 단위로 일괄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군의 사례는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데, 백제조 맨 끝에 수록된 것은 백제로 귀속되는 3주를 모두 정리한 뒤 삭주 소속이면서 백제로 분속된 나이군을 추록(追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윤경진, 2012a, 52~53쪽).
〈참고문헌〉
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노중국, 1995, 「三國史記의 百濟 地理關係 記事 檢討」, 『三國史記의 原典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강래, 1996, 「新羅奈已郡考」, 『신라문화』 13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윤경진, 2012a, 「『三國史記』 地理志 수록 군현의 三國 分屬」, 『한국사학보』 47
井上秀雄, 1974, 「三國史記 地理志の史料批判」,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註) 498
무진주(武珍州): 신라 무주(武州)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일대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0쪽). 다른 기록에는 노지(奴只)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무주’ ‘무진주’ 항목 참조.
註) 500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신라 무주 현웅현(玄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0쪽). 본서 권40 직관지 하 무관조에 신라 10정(十停)의 하나로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이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남평군’ 항목 참조.
註) 501
복룡현(伏龍縣): 신라 무주 용산현(龍山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복룡동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쪽). 다른 기록에는 배룡(盃龍)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복룡현’ 항목 참조.
註) 502
굴지현(屈支縣): 신라 무주 기양현(祁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주조의 ‘창평현’ 항목 참조.
註) 503
분차군(分嵯郡):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1~332쪽). 다른 기록에는 부사(夫沙) 또는 분사(分沙)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분차군’ ‘낙안군’ 항목 참조.
註) 505
조조례현(助助禮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충렬현(忠烈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남양현’ 항목 참조.
註) 506
동로현(冬老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조양현(兆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조양현’ 항목 참조.
註) 507
두힐현(豆肹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강원현(薑原縣, 고흥군 두원면)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2쪽).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나주시 다시면)의 백제 때 지명도 두힐현(豆肹縣)이어서, 백제 두힐현(豆肹縣)은 두 곳이 있었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두원현’ 항목 참조.
註) 508
비사현(比史縣): 신라 무주 분령군(分嶺郡) 백주현(栢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분령군조의 ‘태강현’ 항목 참조.
註) 510
복홀군(伏忽郡):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보성군’ 항목 참조.
註) 511
마사량현(馬斯良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대로현(代勞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마사량현’ ‘회령현’ 항목 참조.
註) 512
계천현(季川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계수현(季水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장택현’ 항목 참조.
註) 513
오차현(烏次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오아현(烏兒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정안현’ 항목 참조.
註) 514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보성군조의 ‘고마미지현’ ‘수령현’ 항목 참조.
註) 515
추자혜군(秋子兮郡):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추자혜군’ ‘담양군’ 항목 참조.
註) 516
과지현(菓支縣):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옥과현(玉菓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다른 기록에는 과혜(菓兮) 또는 과지(果支) 또는 과혜(果兮)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옥과현’ 항목 참조.
註) 518
율지현(栗支縣):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율원현(栗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추성군조의 ‘원율현’ 항목 참조.
註) 519
월나군(月奈郡): 신라 무주 영암군(靈巖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영암군조의 ‘영암군’ ‘월나군’ 항목 참조.
註) 520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반남군’ ‘반나부리현’ 항목 참조.
註) 521
아로곡현(阿老谷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 야로현(野老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아로곡현’ ‘안로현’ 항목 참조.
註) 522
고미현(古彌縣): 신라 무주 반남군(潘南郡) 곤미현(昆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쪽). 다른 기록에는 고미현(枯彌縣)이라고도 하였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반남군조의 ‘곤미현’ 항목 참조.
註) 523
고시이현(古尸伊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갑성군’ ‘장성군’ 항목 참조.
註) 524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 진원현(珍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7~33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진원현’ ‘구사진혜현’ 항목 참조.
註) 525
소비혜현(所非兮縣): 신라 무주 갑성군(岬城郡) 삼계현(森溪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쪽). 다른 기록에는 소을부(所乙夫)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갑성군조의 ‘삼계현’ 항목 참조.
註) 526
무시이군(武尸伊郡):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무시이군’ ‘영광군’ 항목 참조.
註) 527
상로현(上老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장사현(長沙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8~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장사현’ ‘상로현’ 항목 참조.
註) 528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고창현(高敞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고창현’ ‘무량부리현’ 항목 참조.
註) 529
송미지현(松彌知縣): 신라 무주 무령군(武靈郡) 무송현(茂松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령군조의 ‘무송현’ 항목 참조.
註) 530
감평군(欿平郡):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9쪽). 다른 기록에는 무평(武平) 또는 사평(沙平)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승주’ 항목 참조.
註) 532
원촌현(猿村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해읍현(海邑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여수현’ 항목 참조.
註) 533
마로현(馬老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희양현(晞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마로현’ ‘광양현’ 항목 참조.
註) 534
돌산현(突山縣): 신라 무주 승평군(昇平郡) 영산현(廬山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천군 돌산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0쪽). 다른 기록에는 돌산향(突山鄕)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승평군조의 ‘여산현’ ‘돌산현’ 항목 참조.
註) 535
욕내군(欲乃郡):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곡성읍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곡성군’ 항목 참조.
註) 536
둔지현(遁支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부유현(富有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부유현’ 항목 참조.
註) 537
구차례현(仇次禮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구례현(求禮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구례현’ 항목 참조.
註) 538
두부지현(豆夫只縣): 신라 무주 곡성군(谷城郡) 동복현(同福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1~3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곡성군조의 ‘동복현’ 항목 참조.
註) 539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다른 기록에는 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능성군’ ‘이릉부리군’ 항목 참조.
註) 542
파부리군(波夫里郡):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 부리현(富里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복성현’ 항목 참조.
註) 543
잉리아현(仍利阿縣): 신라 무주 능성군(陵城郡) 여읍현(汝湄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2쪽). 다른 기록에는 여빈(汝濱) 또는 해빈(海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능성군조의 ‘화순현’ 항목 참조.
註) 545
발라군(發羅郡):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3쪽). 다른 기록에는 통의(通義)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발라군’ ‘나주목’ 항목 참조.
註) 546
두힐현(豆肹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3쪽). 최근 나주시 다시면의 복암리 유적에서 '두힐사(豆肹舍)'명 토기가 출토되었다(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0, 『羅州 伏岩里遺蹟Ⅰ』, 542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회진현’ ‘두힐현’ 항목 참조.
註) 547
실어산현(實於山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철야현(鐵冶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철야현’ ‘실어산현’ 항목 참조.
註) 548
수천현(水川縣):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여황현(艅艎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다른 기록에는 수입이(水入伊)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금산군조의 ‘여황현’ ‘수천현’ 항목 참조.
註) 550
도무군(道武郡):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4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도강군’ 항목 참조.
註) 551
고서이현(古西伊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고안현(固安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죽산현’ 항목 참조.
註) 552
동음현(冬音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탐진현(耽津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탐진현’ 항목 참조.
註) 553
새금현(塞琴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침명현(浸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5쪽). 다른 기록에는 투빈(投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새금현’ ‘해남현’ 항목 참조.
註) 555
황술현(黃述縣): 신라 무주 양무군(陽武郡) 황원현(黃原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양무군조의 ‘황원현’ 항목 참조.
註) 556
물아혜군(勿阿兮郡):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무안군’ ‘물아혜군’ 항목 참조.
註) 557
굴내현(屈乃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함풍현(咸豊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함풍현’ ‘굴내현’ 항목 참조.
註) 558
다지현(多只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다기현(多岐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6~34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다기현’ ‘다지현’ ‘모평현’ 항목 참조.
註) 560
도제현(道際縣):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해제현(海際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다른 기록에는 음해(陰海) 또는 대봉(大峯)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해제현’ ‘도제현’ 항목 참조.
註) 562
인진도군(因珍島郡):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진도현(珍島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무안군조의 ‘진도현’ 항목 참조.
註) 563
도산현(徒山縣):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7쪽). 다른 기록에는 원산(猿山)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뇌산군조의 ‘뇌산군’ ‘도산현’ ‘가흥현’ 항목 참조.
註) 565
매구리현(買仇里縣):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 첨탐현(瞻耽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뇌산군조의 ‘임회현’ 항목 참조.
註) 566
아차산군(阿次山郡): 백제 아차산현(阿次山縣)의 다른 호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8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압해군’ 항목 참조.
註) 567
갈초현(葛草縣): 백제 아로현(阿老縣)의 다른 호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남창리 일대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갈도현’ ‘아로현’ ‘육창현’ 항목 참조.
註) 570
고록지현(古祿只縣): 신라 무주 압해군(壓海郡) 염해현(鹽海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다른 기록에는 개요(開要)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임치현’ 항목 참조.
註) 572
거지산현(居知山縣): 신라 무주 압해군(壓海郡) 안파현(安波縣)의 백제 때 지명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이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49쪽). 다른 기록에는 굴지산현(屈知山縣) 또는 안릉(安陵)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압해군조의 ‘장산현’ 항목 참조.
註) 575
나이군(奈已郡): 신라 삭주(朔州) 나령군(奈靈郡)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현재의 경북 영주시에 비정된다(李丙燾 역주, 1977, 567쪽). 날이군(捺已郡)이라고도 한다. 나이군은 지리지3 신라편 무주에서는 보이지 않고, 지리지2 신라조에서는 나이군이 삭주에 소속된 ‘나령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나령군은 백제의 나이군인데 파사왕이 빼앗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군이 파사왕때 신라 영역이 되었다는 기사가 본서 신라본기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 등 후대의 지리서에는 본서의 ‘本百濟奈已郡’을 ‘本高句麗奈已郡’으로 고쳐 읽고 있으나 별다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조에는 “順安縣本高句麗柰已郡, 新羅婆娑王, 取之, 景德王, 改爲柰靈郡”으로 되어 있고,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영천군조에서도 “榮川郡, 本高句麗 柰巳郡, 新羅 婆娑王取之, 景德王改爲柰靈郡 … 本朝太宗癸巳, 例改爲榮川郡”이라 하여 나이군을 고구려 땅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이군(奈已郡)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지 편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가 먼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본서 편자가 백제본기에서 백제 멸망 시 37군(郡)이라는 자료를 보고 이 군수(郡數)에 맞추기 위하여 고구려 지명으로 가야 할 나이군을 백제 지명에 더하였다고 보는 견해(井上秀雄, 1974, 89~91쪽), 본서 권35 지리 제2 삭주조의 ‘柰靈郡本百濟奈已郡’이라는 기사는 편찬자의 착오인데 백제 지리지의 편찬자는 이를 보고 나이군이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인하여 무진주조의 말미에 붙인 것이라는 견해(노중국, 1995, 168~170쪽)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경상북도 북단에 있는 나이군이 무진주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서 찬자의 두찬으로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7, 38쪽). 이와 달리 실제 백제의 영유와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상정하는 견해가 있다. 지리지의 나기군(奈己郡)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에게 점유되었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기군은 경북 영주 지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고려사』 지리지 순안현의 연혁에는 나기군이 고구려의 영역으로 수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기군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영역 지배의 추이를 반영한 백제측의 전승 자료에 의거한 것이며. 나기군이 웅주, 전주, 무주의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어서 백제편 말미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이강래, 1996, 26~39쪽).
최근에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삼국의 분속은 주(州) 단위로 일괄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군의 사례는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데, 백제조 맨 끝에 수록된 것은 백제로 귀속되는 3주를 모두 정리한 뒤 삭주 소속이면서 백제로 분속된 나이군을 추록(追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윤경진, 2012a, 52~53쪽).
〈참고문헌〉
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노중국, 1995, 「三國史記의 百濟 地理關係 記事 檢討」, 『三國史記의 原典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강래, 1996, 「新羅奈已郡考」, 『신라문화』 13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윤경진, 2012a, 「『三國史記』 地理志 수록 군현의 三國 分屬」, 『한국사학보』 47
井上秀雄, 1974, 「三國史記 地理志の史料批判」,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나이군(奈已郡)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지 편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가 먼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본서 편자가 백제본기에서 백제 멸망 시 37군(郡)이라는 자료를 보고 이 군수(郡數)에 맞추기 위하여 고구려 지명으로 가야 할 나이군을 백제 지명에 더하였다고 보는 견해(井上秀雄, 1974, 89~91쪽), 본서 권35 지리 제2 삭주조의 ‘柰靈郡本百濟奈已郡’이라는 기사는 편찬자의 착오인데 백제 지리지의 편찬자는 이를 보고 나이군이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인하여 무진주조의 말미에 붙인 것이라는 견해(노중국, 1995, 168~170쪽)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경상북도 북단에 있는 나이군이 무진주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서 찬자의 두찬으로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7, 38쪽). 이와 달리 실제 백제의 영유와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상정하는 견해가 있다. 지리지의 나기군(奈己郡)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에게 점유되었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기군은 경북 영주 지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고려사』 지리지 순안현의 연혁에는 나기군이 고구려의 영역으로 수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기군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영역 지배의 추이를 반영한 백제측의 전승 자료에 의거한 것이며. 나기군이 웅주, 전주, 무주의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어서 백제편 말미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이강래, 1996, 26~39쪽).
최근에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삼국의 분속은 주(州) 단위로 일괄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군의 사례는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데, 백제조 맨 끝에 수록된 것은 백제로 귀속되는 3주를 모두 정리한 뒤 삭주 소속이면서 백제로 분속된 나이군을 추록(追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윤경진, 2012a, 52~53쪽).
〈참고문헌〉
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노중국, 1995, 「三國史記의 百濟 地理關係 記事 檢討」, 『三國史記의 原典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강래, 1996, 「新羅奈已郡考」, 『신라문화』 13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윤경진, 2012a, 「『三國史記』 地理志 수록 군현의 三國 分屬」, 『한국사학보』 47
井上秀雄, 1974, 「三國史記 地理志の史料批判」,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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