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判請求書 罪名 騷擾 被告人 別紙之通 右之者ニ對スル下記ノ被告事件ニ付訴訟記錄相添ヘ及起訴候條被告人呼出有之度候也. 大正8年5月30日 釜山地方法院馬山支廳檢事分局 朝鮮總督府檢事 奧田畯 釜山地方法院馬山支廳 御中 公訴事實 被告權寧震事權寧大, 權泰容, 卞敬宰事卞相泰, 卞相攝, 黃泰益ハ共謀ノ上, 大正8年4月3日舊節句ヲ期シ朝鮮獨立運動ヲ爲サンコトヲ企テ, 昌原郡鎭田面, 鎭北面里ノ各區長ヲ勸誘シ大群衆團ヲ組織シ, 曩ニ權寧祚等カ鎭東憲兵駐在所ニ引致セラレタル復讐ヲモ兼行セントノ意味ヲ以テ同駐在所等ヲ襲擊センカ爲メ, 被告權寧大, 卞相泰, 卞相攝ハ同月2日正午頃鎭田面良村里土地開墾場ニ於テ約7·80名ノ者ニ對シ同運動ニ參加スヘシ, 然ラサレハ鮮人ニアラス犬ノ子ナリ, 後難アルヘシトテ煽動勸誘シ, 被告權泰容ハ同月2日午前鎭田面栗峙里 金順三方ニ於テ, 被告金永鍾ニ對シ同樣ノ趣旨ヲ述ヘ同運動ニ參加スヘキ旨ヲ勸誘シ, 被告金永鍾ハ權泰容ノ意ヲ承ケ同月3日朝自宅ニテ舊韓國國旗ヲ作リ金鳳祚外29名ヲ引率シテ同集團ニ參加シ, 卞相憲, 卞相攝, 卞相述ハ同月2日朝鎭田面鳳岩里飮食店朴永燮方ニ於テ, 同區長具守書ニ對シ同里民ニシテ同運動ニ參加セサルモノハ其家屋ヲ破壞シ踏殺スヘキ旨ヲ以テ脅迫又ハ煽動勸誘シ, 被告具守書ハ其煽動ニヨリ同月3日里民約10名ヲ引率シテ同運動ニ參加シ, 被告卞相泰及黃泰益ハ同月1日被告卞又範方ニ到リ, 同運動ニ參加シ舊韓國國旗ヲ作成スヘキ旨勸誘シ, 被告卞又範ハ之ニ應シ居村書堂ニ於テ同國旗ヲ作リ里民ニ配布シ, 被告黃泰益ハ卞又燮等ニ同國旗ヲ作成スヘキコトヲ勸誘シ又共ニ之ヲ作成配布シ, 而シテ被告相攝, 相述, 守書, 相憲, 永鍾, 又範ハ孰レモ約1千5百名ノ群衆ト共ニ同面里ニ於テ朝鮮獨立萬歲ヲ高唱練行シ, 鎭東憲兵駐在所ニ押寄セントシ投石其他暴行ヲ爲シ, 警戒員タル同駐在所詰憲兵伍長川上淸太郞ノ後頭部其他同上等兵澁谷7次ノ右前脛部, 同補助員沈冝震ノ腰部右側ニ負傷セシメ以テ騷擾ヲ爲シタルヨリ, 同警戒員ハ止ムヲ得ス發砲セシ爲メ暴民中死傷者ヲ生スルニ至リ漸ク解散シタルモノトス. 以上 權寧震事 權寧大 權泰容 卞敬宰事 卞相泰 黃泰益 卞相攝 卞相述 具守書 卞相憲 金永鍾 卞又範 以上 |
공판청구서 죄명 소요. 피고인 별지와 같음. 위 자에 대한 下記의 피고사건에 관하여 소송 기록을 첨부하여 기소하기에 이르렀으니 피고인 호출있기를 바람. 大正 8년 5월 30일 釜山地方法院 馬山支廳 검사분국 朝鮮總督府 검사 奧田畯 釜山地方法院 馬山支廳 귀중 공소사실 피고 權寧震 즉 權寧大·權泰容·卞敬宰 즉 卞相泰·卞相攝·黃泰益은 공모한 후 大正 8년 4월 3일 옛 節日을 기해 조선독립운동을 할 것을 기도, 昌原郡·鎭田面·鎭北面 각 里의 구장에게 권유하여 大群衆團을 조직하고 앞서 權寧祚 등이 鎭東憲兵駐在所에 인치되었던 복수도 겸행한다는 뜻으로서 그 주재소 등을 습격하기 위해 피고 權寧大·卞相泰·卞相攝은 같은 달 2일 정오경 鎭田面 良村里 토지 개간장에서 약 7·80명의 사람들에게 그 운동에 참가하라, 그렇지 않으면 조선인이 아니라 개자식이다. 後難이 있을 것이라고 선동·권유하였으며, 피고 權泰容은 그 달 2일 오전 鎭田面 栗峙里 金順三의 집에서 피고 金永鍾에게 같은 취지를 말하여 그 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으며, 피고 金永鍾은 權泰容의 뜻을 받아 그 달 3일 아침 자기 집에서 구한국 국기를 만들고 金鳳祚 외 29명을 인솔하여 그 집단에 참가하였고, 卞相憲·卞相攝·卞相述은 그 달 2일 아침 鎭田面 鳳岩里의 음식점 朴永燮의 집에서 그 구장 具守書에게 그 里民으로 그 운동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그 가옥을 파괴하고 밟아 죽일 것이라고 하여 협박 또는 선동·권유하였으며, 피고 具守書는 그 선동에 의해 그 달 3일 里民 약 10명을 인솔하고 그 운동에 참가하였고, 피고 卞相泰 및 黃泰益은 그 달 1일 피고 卞又範의 집에 가서 그 운동에 참가하고 또한 구한국기를 작성할 것을 권유하였으며, 피고 卞又範은 이에 따라 사는 마을의 서당에서 그 국기를 만들어 里民에게 배포하였고, 피고 黃泰益 등에게 그 국기를 작성할 것을 권유하고 또 함께 이를 작성·배포 하였으며, 그리하여 피고 相攝·相述·守書·相憲·永鍾·又範은 모두 약 1천 5백 명의 군중과 함께 그 面里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며 줄지어 가서 鎭東憲兵駐在所에 밀어 닥치려고 투석, 기타폭행을 하여 경계원인 그 주재소 근무 헌병 伍長 川上淸太郞의 후두부 기타 헌병 상등병 澁谷七次의 바른쪽 앞무릎 부분, 헌병보조원 沈宜震의 허리 부분 왼쪽에 부상을 입혀 소요를 하였으므로, 그 경계원은 할 수 없이 발포하였기 때문에 폭민 중 사상자를 내기에 이르렀고 겨우 해산한 것이라고 함. 이상 權寧震 즉 權寧大 權泰容 卞敬宰 즉 卞相泰 黃泰益 卞相攝 卞相述 具守書 卞相憲 金永鍾 卞又範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