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를 왕후로 삼다 ( 180년 02월(음) ) 二年, 春二月, 立妃于氏爲王后. 后提那部于素之女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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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素 |
우씨를 왕후로 삼다 ( 180년 02월(음) ) 2년(180) 봄 2월에 비(妃)인 우씨(于氏)註 001001 우씨(于氏) :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과 제10대 산상왕의 왕비를 지낸 인물이다. 연나부(椽那部) 우소(于素)의 딸로 고국천왕 2년(180)에 고국천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왕자를 낳지 못하였다. 197년 고국천왕이 후사(後嗣)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자, 왕의 동생들이 각 나부의 지배세력과 연계하여 왕위 계승전을 벌였다. 이때 연나부 출신인 우씨 부인은 둘째 동생인 연우(延優: 伊夷模)와 결탁하여 그가 산상왕으로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에 첫째 동생인 발기(發岐)는 소노부(消奴部; 沸流那部) 세력과 함께 반발하며 공손씨 정권에 투항하기도 하였다. 연우가 우씨 부인의 출신부인 연나부와 연계하여 왕위 계승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소노부[비류나부]의 후원을 받았던 발기는 패배하였던 것이다.
산상왕이 즉위한 다음, 우씨 부인은 당시의 혼인 풍습인 취수혼(娶嫂婚)에 따라 시동생인 산상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왕자를 낳지 못하였다. 동천왕 2년(228)에 왕태후에 봉해졌다가 234년에 사망하였는데, 본 남편인 고국천왕릉 곁에 묻혀야 하는 취수혼의 관행에 따르지 않고 산상왕릉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산상왕릉 곁에 장사지냈는데, 이를 본 고국천왕의 혼령이 산상왕릉 곁으로 가던 우씨 부인의 혼령과 싸웠다고 한다. 그의 일대기를 통해 왕실인 계루부와 각 나부가 합종연횡하며 정치를 운영하던 양상과 더불어 왕위의 형제계승원리와 형사취수혼(兄死娶嫂婚) 등 고구려 초기 사회가 변모하던 양상을 엿볼 수 있다(盧泰敦, 1983: 1999, 171~203쪽). 이에 대해 형사취수혼은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부자상속의 확립을 위해 도입되었다고 보거나(김수태, 87~101쪽) 고구려 초기의 왕위계승원리는 부자상속으로 우씨와 산상왕의 결혼은 형사취수라는 측면보다 우씨의 정치력을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윤상열, 219~241쪽). 또한 산상왕과 우씨의 결합은 계루부와 연나부의 정치적 결합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기도 한다(김지희, 14~24쪽). 한편 ‘우(于)’는 그의 성씨가 아니라 중국식 필법에 입각하여 아버지의 이름인 우소(于素)에서 억지로 성씨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도 한다(三品彰英, 47쪽). 〈참고문헌〉 三品彰英, 1954, 「高句麗の五族について」, 『朝鮮学報』 6 盧泰敦, 1983, 「高句麗 초기의 娶嫂婚에 관한 一考察」,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知識産業社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김수태, 2005 「2세기 말 3세기 대 고구려의 왕실혼인」, 『한국고대사연구』 38 윤상열, 2007, 「고구려 王后 于氏에 대하여」, 『역사와 실학』 32 김지희, 2018, 「고구려 혼인 습속의 계층성(階層性)과 그 배경」, 『동북아역사논총』 60닫기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 왕후는 제나부(提那部)註 002002 제나부(提那部) : 제나부를 특정 나부의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손영종, 1984: 1990, 256쪽; 田美姬, 168쪽; 윤상열, 219쪽). 그렇지만 고국천왕 12년(190)에 모반한 왕후의 친척인 어비류(於畀留)와 좌가려(左可慮)가 연나부(椽那部) 출신으로 나오고, 이 시기에 연나부가 계속 왕비를 배출한 것으로 보아 ‘제나부’는 ‘연나부’의 오기로 파악된다(이병도, 293쪽; 李基白, 84쪽; 노태돈, 106쪽). 연나부에 대해서는 본서 권14 고구려본기2 대무신왕 5년(22) 7월조 참조. 〈참고문헌〉 李基白, 1959, 「高句麗王妃族考」, 『震檀學報』 20 손영종, 1984, 「고구려의 5부」, 『력사과학』 1984-4; 1990, 『고구려사 (I)』,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田美姬, 1992, 「高句麗 初期의 왕실교체와 五部」, 『朴永錫敎授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上)』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윤상열, 2007, 「고구려 王后 于氏에 대하여」, 『역사와 실학』 32 이병도, 2012, 『(두계이병도전집 11) 국역 삼국사기』, 한국학술정보닫기 우소(于素)註 003003 우소(于素) : 2세기 후반에 활동한 인물로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의 장인이다. 고국천왕 2년(180)에 딸이 고국천왕의 왕후가 되었다. 본문의 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출신부를 제나부(提那部)라 하였으나, 고국천왕 12년(190)에 모반한 왕후의 친척 어비류(於畀留)와 좌가려(左可慮)가 연나부(椽那部) 출신이고, 이 시기에 연나부가 계속 왕비를 배출한 것으로 보아 제나부는 연나부의 오기로 파악된다(李基白, 84쪽; 노태돈, 106쪽, 이병도, 293쪽). 〈참고문헌〉 李基白, 1959, 「高句麗王妃族考」, 『震檀學報』 20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이병도, 2012, 『(두계이병도전집 11) 국역 삼국사기』, 한국학술정보닫기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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