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27. 尹奉吉 자서 약력과 유촉  

127. 尹奉吉 자서 약력과 유촉

이력서

 본적 忠南 禮山郡 德山面 柿梁里 一三九번지

 본관 坡平

 부 尹璜, 모 金元祥

 애국단원 奉吉(戊申년 5월 22일생(西曆 1901년))

 7년에 私塾에 취학인대 8 · 9同介 중에 聰明하엿슴으로 先生의게 와 隣里父老들이 才童이라 呼名하엿다. 그 반면에 또 하나의 별호는 ‘살가지(狸)’엿다. 性質이 남달이 굿셰고 죠급하엿슴으로 동무들과 다툼에 敗한 젹이 업셧스며 혹은 接長한태 맛드라도 눈물 흘이고 울지 안니하고 되이려 辱說을 하엿스며 書堂 규칙위반으로 先生이 종아리 치랴고 거더슬라하면 두 눈을 크게 고 말둥 말둥 쳐다만 보앗다. 15년 되도록 篤工을 하엿슴으로 四律一首는 無難이 작성하엿다. 이 아래 기재된 玉連環詩 一經은 15년  7월 罷接時 여러 賓客이 나의 재능을 보기 위하여 前韻成詩엿다. 不杇聲名士氣明 士氣明明萬古時 萬古晴心都在學 都在學行不杇聲. 16년 되든 해 여러 선생의 忠告를 不願하고 日語速成讀本을 사다가 일어를 자습하기로 果斷하엿다. 1년간 無少間斷을 孜孜乞乞 하엿슴으로 통화는 능하엿다.

17년에는 ‘犬도 안니 먹는 똥을 누는 사람’이 되엿다. 부형네 권고, 또는 隣里선생의 권유 뿐만 안니라 내가 내 자신을 성찰하여도 할 일이 업셧다. 그럼으로 부득이 7 · 8 아동을 가르치게 되엿다. 18년까지 2개년이다.

19년에는 피폐한 농촌개척을 목적하고 洞里 父老와 상의하여 동내에 3층 강당을 셰우고 돈 업셔 공부 못하는 아동을 모집하며 야학을 근근이 한 결과 성적이 매우 우수하엿다. 그 아동 및 부형과 친목을 도모하여 美風良俗을 장려키 위하여 매년 학예회를 개최하엿고 또는 月進會를 조직하여 매월 1회씩 월례회에 집합하여 古談 및 新思潮를 강연하엿다.

 이하 기재는 柿梁洞歌이다.

 곡조는 半月曲으로

 1. 造化神功의 伽倻山 정기를 밧고

  絶勝京槪 修德山의 정기를 모와

  錦繡江山 三千里 무궁화원에

  기리기리 빗츨 내는 우리 柿梁里

 2. 伽倻山은 우리의 배경이 되고

  온천들은 우리의 무대장이라

  두 팔 것고 두 발 벗고 출연하여셔

  어셔 밧비 自作自給 실현을 하자

 3. 暗黑東天 啓明星이 도다 오나니

  弱肉强食 殘忍性을 내여 바리고

  相助相愛 넉자를 鐵案 삼어셔

  굿셰이게 단결하자 우리 柿梁里

 23년 나리가고 해가 갈사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다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이셧다. 솔직이 말하자면 뻣뻣 말너가는 三千里江山을 바라보고만 이셧슬 수 업셔라. 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이 안져 볼 수는 업셧다.

 여기에 각오는 별 것이 안니다. 나의 철권으로 적을 즉각으로 보시랴 한 것이다. 이 철권은 늘 속에 들어가면 무소용이다. 늙어지면 無用이라 나 귀에 쟁쟁한 것은 上海 假政府엿다. 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슬러운 부모형제와 艾妻愛子와 따뜻 고향산천을 바라고 쓰라린 가삼을 부여잡고 압록강을 건넛다.

 나셔 보니 먼져 닥치는 것은 금전의 고통이라 간신이 靑島까지 왓스니 上海까지 올 여비는 업셧다. 그럼으로 日人 中原兼次郎세탁소에 雇人이 되엿다. 출가 여비는 내 돈이 안니엇고 월진회비엿슴으로 내가 이왕 雇人된 이상에는 그 돈을 還償하고 여비되는대 나라고 하엿다. 그러머로 1년간 留滯하엿다.

 24년 5월 8일에 목적지인 上海에 상륙하엿다. 나를 맛는 사람은 업셔스나 목적지 온 것만는 무상 깃버다.

 남의 주머니에 금이 들엇는지 똥이 들엇는지 누가 알리요. 와셔 보니 또 닥치는 금전 곤란이다. 그럼으로 中國鬃品公司 직공이 되엿다.

 본 공장 한인 工友가 17명이엿슴으로 한인공우친목회가 창립되엿다. 공우회의 회장이라는 명칭으로 띄엿셧다.

 그런대 廠主 朴震이와 사소한 감정이엇셔 해고를 당하고 柱春健군과 한 가지 虹口蔬菜場 개점하엿다.

 그리고 그 후는 여러 선생님들이 아실 것이다.

 유족 부 尹璜(辛卯년 11월 5일생)

    모 金元祥(廣州, 己丑년 12월 16일생)

    처 裵用順(星州, 丁未 8월 15일생)

    長子 模淳(丁卯 9월 11일생)

    2子 淡 나 객지 나온 뒤에 출생(庚午년 5월 19일생)

 襁褓에 싸인 두 병정에게(槿淳, 淡)

 너이도 만일 피가 잇고 뼈가 잇다면 반다시 朝鮮을 위하야 용감한 투사가 되여라. 태극에 기발을 놉피 드날니고 나의 빈 무덤 앞헤 차져와 한 잔 술을 부어노으라.

 그리고 너의들은 아비 업슴을 슬퍼하지 말어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잇스니. 어머니 교육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孟軻가 잇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푸레옹이 잇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잇다. 바란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의들은 그 사람이 되여라.

 수필

 피 끌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이 와셔 왜걸대나 피 끌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돼놈 되와셔 되가는대 왜놈은 와셔 왜 안니가나. 피 끌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東天에 曙色은 점점 밝아오는대 從容한 아참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끌는 청년 제군들이 준비하셰, 군복 입고 총 메이고 칼 들며 군악나팔에 발 맛추어 행진하셰.

 27일

 新公園에셔 踏書하며 萋萋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일으거든 王孫으로 더부러 갓저오게 靑靑한 芳草여 명년에 춘색이 일으거든 高慮江山에도 단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동년 4월 29일에 放砲一聲으로 盟誓하셰

 白凡선생의게

 巍巍靑山兮여 載育 萬物이로다

 鬱鬱蒼松兮여 不變四時로다

 濯濯鳳翔兮여 高飛千內이로다

 擧世皆濁兮 선생 獨靑이로다

 老當益壯兮여 선생 義氣로다

 臥薪嘗膽兮여 선생 赤誠이도다.

▪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