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를 왕후로 삼다. ( 197년 09월(음) )

〔원년(197)〕 가을 9월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발기의 시신을 받들어 모셔오게 하여, 왕의 예로써 배령(裴嶺)001001 배령(裴嶺) : 산상왕의 형 발기를 장사 지낸 곳으로,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본서 권37 잡지 제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도 기재된 것으로 보아 본서 찬자도 그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닫기에 장사지냈다. 왕이 본래 우씨로 인하여 왕위를 얻었으므로 다시 장가들지 아니하고 우씨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002002 우씨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 : 고국천왕 사망한 후 동생인 산상왕이 왕위를 계승한 것은 형제 상속 원리와 유사하다. 형제상속은 형사취수제와 짝을 이루는데, 산상왕이 형수인 우씨를 다시 아내로 삼았다는 점에서 형사취수의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盧泰敦, 1983: 1999, 171~203쪽). 취수혼(娶嫂婚, levirate)은 형제의 사후 그 처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혼인 풍속이다. 『삼국지』 권30 위서 동이 부여전에는 부여에 취수혼이 있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산상왕과 우씨의 취수혼을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부자상속을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김수태, 110쪽). 또 취수혼은 지배층의 혼인습속으로. 서옥제는 피지배계층의 혼인습속으로 나누어 혼인 양태의 계층성을 파악하기도 한다(김지희, 41쪽).
〈참고문헌〉
盧泰敦, 1983, 「高句麗 초기의 娶嫂婚에 관한 一考察」,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知識産業社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김수태, 2005, 「2세기말 3세기대 고구려의 왕실혼인 -취수혼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38
엄광용, 2006, 「고구려 산상왕(山上王)의 ‘취수혼 사건’」, 『사학지』 38
윤상열, 2007, 「고구려 王后 于氏에 대하여」, 『역사와 실학』 32
조영광, 2017, 「夫餘, 高句麗 社會의 北方文化的 要素에 대하여」, 『동양학』 66
김지희, 2018, 「고구려 혼인 습속의 계층성(階層性)과 그 배경」, 『동북아역사논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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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1
배령(裴嶺) : 산상왕의 형 발기를 장사 지낸 곳으로,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본서 권37 잡지 제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도 기재된 것으로 보아 본서 찬자도 그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註 002
우씨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 : 고국천왕 사망한 후 동생인 산상왕이 왕위를 계승한 것은 형제 상속 원리와 유사하다. 형제상속은 형사취수제와 짝을 이루는데, 산상왕이 형수인 우씨를 다시 아내로 삼았다는 점에서 형사취수의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盧泰敦, 1983: 1999, 171~203쪽). 취수혼(娶嫂婚, levirate)은 형제의 사후 그 처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혼인 풍속이다. 『삼국지』 권30 위서 동이 부여전에는 부여에 취수혼이 있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산상왕과 우씨의 취수혼을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부자상속을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김수태, 110쪽). 또 취수혼은 지배층의 혼인습속으로. 서옥제는 피지배계층의 혼인습속으로 나누어 혼인 양태의 계층성을 파악하기도 한다(김지희, 41쪽).
〈참고문헌〉
盧泰敦, 1983, 「高句麗 초기의 娶嫂婚에 관한 一考察」,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知識産業社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김수태, 2005, 「2세기말 3세기대 고구려의 왕실혼인 -취수혼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38
엄광용, 2006, 「고구려 산상왕(山上王)의 ‘취수혼 사건’」, 『사학지』 38
윤상열, 2007, 「고구려 王后 于氏에 대하여」, 『역사와 실학』 32
조영광, 2017, 「夫餘, 高句麗 社會의 北方文化的 要素에 대하여」, 『동양학』 66
김지희, 2018, 「고구려 혼인 습속의 계층성(階層性)과 그 배경」, 『동북아역사논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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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례>관혼상제>상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