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京의 朝鮮人
北京의 朝鮮人
從軍文士 林學洙
從軍文士 林學洙
朝鮮人 氣質
北京 東堂子胡同 총독부 출장소 내의 모 사무관 談
―北支의 朝鮮人은 대단히 평판이 나쁘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개괄적으로는 원인이 둘로 나뉘는데, 1은 朝鮮人의 직업이 모히, 코카인의 禁制品을 밀매하는 것. 2는 선량한 中國人의게 사기, 공갈 등 불량한 행위를 하는 것. 北支 在住 약 40,000명인데 대개는 滿洲에 있다가 들어온 사란들로 9할 5분은 표면 잡화점 등의 간판을 걸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대반이 밀매자이다. 사실 중국인은 모히를 절대로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장소에 따라는 그들이 이 밀매자들을 보호하여 주기로 한다. 또한 朝鮮人만이 밀매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로시모도」는 외국인이다. 그들은 X艦에다 실고 오기까지 한다. 결국은 조선인이 그 수족 노릇을 하는 것으로 문제는 조선인은 대부분이 밀매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 聖戰의 목적하는 바는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도하자는 것이요, 「모히」를 팔아 자멸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 取締의 대상은 조선인이 된다. 이의 대책으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생업을 전향시키는 것이다. 그래 京漢線 연선에다 방금 농장을 준비하고, 거기 모여 농작을 하게 하고 자본을 융통하여 줄 계획이다.
그러나 이 보다도 곤란한 것은 세력을 믿고 불량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조선인은 사변 전부터 들어온 사람이 많어, 중국인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중국어도 능하다. 그래 군이나 헌병대의 통역으로 많이 기용하는데, 그 중에는 실로 용감하고 충직한 훌륭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통역 등을 가운데에 두고, 그의 세력을 빌어 가옥을 얻고 貰錢을 아니 내거나 미곡을 징발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이 北支에 있어서의 조선인의 발전에 큰 장해을 일으키고 있고, 또 중국인은 조선인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다.
최근에 와서는 모든 점이 차차 호전하여 지고는 있다.―
사변 전부터 北支에 들어와 착실한 직업으로 상당히 성공한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변 직후 일확 천금을 꿈꾸고 물밀듯 밀려든 그들은 남자나 여자나 차라리 滿洲로 집단 이민이 되어가는, 그 생활은 어려우나, 끝까지 소박하고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농민들과는 유달리 오로지 세상을 꾀와 속임수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278> 었습니다. 중국인은 아무리 쿠우리일지라도 그 민족의 독특한 예의라든지는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우리네 전체에게 辱되는 일을 눈 앞의 적은 이 끝을 위하여 감히 한다는 말이요. 자본 없고 취직 못하고 먹을 것이 없어 그 길로 나서는 건 동정할 여지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떻게 단순히 집어 치우기에는 대륙 진출의 뜻을 둔 후진에게 아니 여러 가지 의미로 너무나 영향이 큰 문제입니다. 다행히 당국에서는 장차 농장을 베풀고 자본까지 융통하여 준다 하니, 부디 그 땅이 비옥하고 또 天災도 없어 하루 속히 신성한 개척자가 많이 나기를 축원합니다.
解決 方法
우리들의 거류민은 넷으로 나눌 수가 있읍니다. 착실한 직업을 가진 이와 군이나 관헌의 지도 하에서 勇敢無比한 활동을 하는 이와 위에 말한 禁制品 밀매자와 여자를 더불고 가서 하는 요리점. 等屬. 전자의 둘은 세계에서도 칭찬하고 있으나 극소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명예를 만회할가? 자기의 힘으로 정당한 일을 개척하여야 할 것입니다. 매일 北支로 北支로 밀려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관헌이 지도하고 생계를 세워줄 수는 도저히 없는 일입니다. 농장 이외의 방법으로는 민간으로서의 유력한 회사가 생겨서 거기 우수한 분자는 수용하고, 또 일반 거류민도 어느 정도로 연락을 가질 것입니다. 얼마전 이 포부를 가지고 당국의 양해 하에 北京의 어떤 유력한 이가 서울 와서 활동하였으나 朝鮮 안의 실업가 제씨는 그 뜻에는 크게 찬동하면서도, 결국 자기가 500,000원의 物産무역회사를 만들기 위하여 100,000원을 책임지겟담에도 불구하고 다 자금 내기를 주저하여 실패하였다 합니다. (하략)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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