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海時報 總經理 崔敬洙氏와 上海의 朝鮮人 諸問題를 語함
上海時報 總經理 崔敬洙氏와 上海의 朝鮮人 諸問題를 語함
三千里社 朴啓周
三千里社 朴啓周
資本金 50萬圓을 全額 拂込한 上海時報의 總經理로 게신 崔敬洙氏가 마츰 3月下旬, 東京가는 길에 入京하였음으로 訪問하여 諸事情을 듣다.
一. 上海, 南京等地의 居留同胞
記者 현재 上海에 居留하는 朝鮮人의 總數는 얼마나 됩니까.
崔敬洙 前上海朝鮮人居留民會의 登記에 의하면 7,000명 내지 8,000명이라 하지마는 실제에 있어서는 居留同胞의 수가 4,000명에서 불과합니다. 그것은 北支나 혹온 다른 지방에 거주하면서도 무슨 商業手段으로 上海에 居住屆를 屆出한다든가 또는 上海에 居住屆를 내고도 他地方으로 가 있는 자가 태반이므로 정확한 居留民의 數爻는 불과 4 ,000일 것입니다.
記者 南京에는 얼마나 居住하고 있습니까.
崔敬洙 南京에는 1,000명의 居留同胞가 있습니다.
記者 事變 前의 上海居留同胞의 數爻는 幾名이였나요.
崔敬洙 事變 前의 上海居留同胞를 2種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商人들은 300여명에 달했으며 外國租界 內에 있은 思想客들은 200여명에 달했습니다.
二. 旅行 及 移住에 對하여
記者 上海, 기타 中支方面으로 여행하려거나 혹은 移住하려면 如何한 手續을 밟아야 합니까.
崔敬洙 北支와 마찬가지로 上海방면에 渡航하려면 該地駐在總領事의 證明이 있어야 합니다. 즉 支那로 건너가려는 사람은 그 目的地에 居住하는 사람의 會社나<132> 商店에 취직 케 되었다는 것을 該會社나 상점측에서 當地 領事館에 屆出하면 領事館에서 사실여부를 조사하여 본 뒤에 확실하다면 波航者의 居住地警察署로 통지하여서 다시 警察署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되므로 현재는 옛날과 같이 마음대로 건너갈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目的地 에 일자리를 얻어 놓고야 건너가게 마련이지요.
記者 金錢은 얼마까지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崔敬洙 50원 이상은 提携치 못하게 합니다.
三. 朝鮮人의 經濟生活狀態
記者 在上海의 朝鮮人의 經濟生活狀態는 如何합니까. 특히 朝鮮同胞의 職業率과 인테리層의 就職現狀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崔敬洙 대체로는 商業에 종사하는데 그 經濟生活狀態가 事變 前보다는 數倍나 豐裕하다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不正業者가 아직도 多少있어서 우리들의 한 羞恥로 이것 이 在外同胞의 발전에 큰 癌이 되여있습니다. 無論 이것에는 在支同胞에게 있어서 法律的 보장이라든가 또는 자본과 기술 등의 여러 가지의 결함이 있어서 부득기 그러한 방면으로 흐르기 쉬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으나 正當한 見地에서 냉정한 批判을 加한다면 돈을 위해서는 民무 체면도 돌보지 않는 族屬이라는 것에 탄식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기는 支那新政府가 막대한 경비를 써가면서 阿片根絶에 노력해 왔는데 지금 와서 이 阿 片密賣業을 우리 가운데 多少하는 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爲替買賣, 不正事業 등 실로 우리의 중대문제라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의 帝國總領事館에서와 軍當局에서 상당히 取締도 하며 그 善導에 노력하고 있으니까 차츰 나어질 것입니다.
四. 上海에서 새로 開業할 수 있는가
記者 上海에서 새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까.
崔敬洙 지금은 절대로 새로 商業을 시작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當地에 본래부터 있던 諸商人들도 組合에 가입해야 하므로 새로 開業하기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記者 딴쓰홀같은 類의 사업도 역시 마찬가진가요?
崔敬洙 그런 遊興事業은 더욱 不許可합니다.
記者 上海에 朝鮮人經營의 딴쓰홀이 몇이나 됩니까.
崔敬洙 「極東딴쓰홀」이라는 단 한 개의 딴쓰홀만 있습니다.<133>
記者 南京에 있는 1,000여명의 朝鮮 同胞는 대체로 어떠한 事業에 從事하고 있습니까.
崔敬洙 부끄러운 말이지만 대부분은 慰安所, 즉 遊廓業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記者 上海의 物價는 어떠합니까.
崔敬洙 쌀 100파운에 36원인데 100파운이라면 5升斗 다섯말이나 됩니다.
五. 上海의 朝鮮人 大學生과 敎授
記者 上海에 있는 各 大學에 朝鮮人學生이 얼마나 있습니까.
崔敬洙 제가 아는 것으로서는 滬江大學에 朝鮮人學生이 2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별로 있는 상 싶지 않습니다.
記者 朝鮮人 敎授는 없습니까.
崔敬洙 維新學院에 安國鉉이라는 助敎授 한분이 있고 滬江大學에 趙東善이라는 音樂敎師가 있습니다. 事變 前에는 上海交通大學에 申用權이라는 敎授도 있었습니다마는.
六. 上海서 活躍하는 朝鮮人實業家
記者 上海에서 活躍하는 朝鮮同胞의 實業家나 財産家나 有名人士는 누구누구입니까.
崔敬洙 글쎄요. 어떤 분을 有名人士라고 해야 할 지 그 標準을 세우기가 어렵군요. 實業家 로는 三河興業株式會社의 奉命石氏, 新亞商事公司의 金世元氏, 水農組의 黃水龍氏, 亞細亞택시會社의 林承業 氏, 東和組株式會社 등이 있습니다.
七. 上海의 朝鮮人 文化施設
記者 朝鮮人經營의 朝鮮學校가 있습니까.
崔敬洙 事變 前에는 仁成學校가 있었으나 事變 後에 廢校케 되였으며 그 외로는 朝鮮人經營의 幼稚園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記者 그他 文化施設은 如何합니까.
崔敬洙 上海에 오는 이가 대체로는 돈 벌기만을 목적하고 건너오기 때문에 그러한 文化施設에 留意하는 이가 매우 적습니다. 그러한 관계로 海外朝鮮人은 더욱 外人에게 低級한 人間待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學校 하나 없고 書店하나 없고 圖書館 하나 없고 雜誌 하나 없습니다. 단지 文化施設이라고 하면 微微하나마 저의 上海時報社라는 新聞社 하나 뿐이나 이것 역시 上海居留朝鮮人의 投資로 된 것은 아니니 寒心하기 짝이 없지요. 저의 社에서 年內로 朝鮮文雜誌 하나와 中國文雜誌 하나를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 다.<134> 朝鮮文雜誌를 발간하면 절반은 中支一帶의 朝鮮人 現狀과 發展策에 관한 기사를 揭載하여서 海內 동포에게도 알리고 절반은 海內의 諸狀况을 알려서 海外同胞에게 알리므로 海內海外同胞가 서로 소식을 알게 되고 의견을 교환하여써 文化와 實業과 기타 제반의 連絡 及 振興을 꾀하려 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視察團도 조직하여서 朝鮮과 內地에 派遺 하는 등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 振興과 連絡을 갖게하려 합니다.
八. 今後의 發展方法
記者 마지막으로 今後의 中支在留同胞의 發展方法에 관해서 몇 말씀 들려 주십시요.
崔敬洙 今後의 發展策에 있어서는 물론 經濟的 基礎가 무엇보다 喫緊한 問題의 하나이겠으며 따라서 技術問題가 뒤따르는 第2의 과제이겠으나 그 보다도 朝鮮人의 精神的 自覺이 第一 큰 문제라 봅니다. 在來의 個人主義思想과, 돈만을 위해서 아무 業도 상관하지 않고 따라서 우리의 羞恥도 돌보지 않던 그러한 惡習慣을 抛棄하고 人格的 復活, 文化的 新出 發 등으로 우리의 文化水準을 向上시키므로써 外人의 朝鮮人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는데 서 우리의 발전에 生氣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上海에 있는 外國人은 물론 內地人까지도 朝鮮人은 阿片장사나 賣淫業이나 또는 密輸業 등을 하는 가장 천하고 가장 고약한 놈들로 인식되여 있기 때문에 좀처럼 신임을 받을 수 가 없고 무슨 사업을 하자해도 상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無論 上海에 있는 朝鮮人 全體가 그런 것은 아니나 일부의 惡德輩로 인하여 우리 전체가 羞恥받는다는 것은 실로 痛嘆할 일이며 이들의 「人格改造」가 무엇보다 在支朝鮮人의 發展策의 첫 關門이라 생각합니 다.<135>
<13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