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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일자
1047년 04월 미상 (음)
○최충(崔沖)을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김영기(金令器)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김원충(金元沖)을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로, 박유인(朴有仁)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尙書左僕射 參知政事)로, 이자연(李子淵)을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 參知政事)로 삼았다. 전례에서는 선마(宣麻)하는 날에 재신 한 사람이 조안(詔案)을 가져와 조서를 읽는 사람에게 주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5인의 재상이 같은 날에 선마를 받았으므로 특별히 합문사(閤門使)에게 명하여 조안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이로써 영구한 법식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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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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