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보 등을 임명하다
○최세보(崔世輔)를 특진 수태사(特進 守太師)로, 두경승(杜景升)을 수태위(守太尉)로, 이의민(李義旼)을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박순필(朴純弼)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삼고, 사정유(史正儒)를 수사공 좌복야 참지정사(守司空 左僕射 參知政事)로, 이혁유(李奕蕤)를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이지명(李知命)을 태자소부(太子少傅)로 삼았으며, 백임지(白任至)를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 삼았다. 이에 앞서 문하성의 재신[省宰]이 증원되어 7명에 이르렀다. 당시 논의가 옛 제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 증원하여 8명으로 하였다. 항간에서 노래하기를, “황국(皇國)에 실제로는 절이 없는데, 문하성[省]에는 7재(齋)를 두었네, 7재도 지금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8재가 다시 들어오네.”라고 하였다. 대개 재(宰)와 재(齋)의 소리가 서로 비슷하니 은어[廋辭]를 만들어서 이를 기롱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