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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鬱陵島 調査槪況 및 山林調査槪況 報告의 件]
(47) [鬱陵島 調査槪況 및 山林調査槪況 報告의 件]
機密京第17號
小官은 5월 30일 警部 渡邊鷹次郞 및 當領事館 소속 巡査 高倉純雙과 심복 岡登之進 및 佐藤潤象을 데리고 材木 조사를 위하여 內部의 視察官 禹用影 및 釜山 監理署 主事 金冕秀와 함께 二十日 蒼龍號에 편승하여 鬱陵島를 향해 출발하여 31일에 도착 상륙한 다음날부터 3일간 島監 裵季周의 집에서 명받은 조사 사항에 대해 쌍방이 입회하여 일본인 및 島監을 취조하였습니다. 나머지 날은 산림과 기타의 잡무를 조사하고 6일에 귀로에 올라 다음날인 7일에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명을 받은 조사 보고 및 기타의 雜項은 다음 편으로 송부하겠습니다. 여기에 別紙로 울릉도 조사 개황 및 同島 의 산림 조사 개황을 송부해 드리니 열람하시기 바라며 이 점 보고드립니다. 敬具
1900년 6월 12일
在釜山 領事官補 赤塚正助
在京城 特命全權公使 林權助 殿

鬱陵島 山林調査 槪況
鬱陵島는 韓國의 강원도에 속한 도서로 松島 또는 竹島라고도 칭한다. (동경 130度 8分 2厘, 북위 37度 5分) 부산에서 동북쪽으로 180마일, 境港에서는 서북쪽으로 200마일, 隱岐에서는 140마일 떨어진 곳으로, 동서는 모두 6마일 정도이고 남북은 대략 4마일 정도인데, 해면을 빼면 약 4000尺, 주위는 대략 20里 정도이다. 돌이 많은 척박한 땅이나 산봉우리가 빽빽하여 울창한 천연의 삼림으로 햇빛을 보지 못하는 곳이 반을 차지하고 있고, 늙은 나무가 말라 죽어 가는 곳이 지금도 적지 않다. 육지에서 140마일 떨어진 小島로 해저는 깊고 짙은 남색을 띠고 있는데 풍파가 언제나 사납고 특히 灣形을 할 곳이 없어 선박이 정박하기에 불편하다.
예상 면적은 대략 9331町 2反步로, 그 중 대강 6998町 反步는 산림지이고,(1498町 4反步는 谿谷과 암석으로 5500町步는 수림인 듯함) 약 2332町은 反步는 나무를 심을 수 없는 땅에이며, 500町步는 切替畑地, 1832町은 反步는 불모지 기타로 되어 있다.
산림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천연림으로 활엽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종은 山毛欅, 단풍, 다부, 동백나무(椿), 매화다무(梅), 떡갈나무(欅), 白丹, 모찌, 櫻, 산달래, 桑, 五葉松, 榎 등으로 그 중 느티나무가 질이 가장 양호하고 나ant결이 치밀하지만, 매화나무는 좋지 않으며 기타는 일본종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운반은 경사가 매우 심하나 바다와 그리 멀지 않아 谿水 또는 雨水에 의지하여 부근의 연안으로 반출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과거에 느티나무를 벌목한 개황은 명료하지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일본에 대목을 반출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本願寺 건축용 목재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벌목한 밑동 부분을 실제로 보았다. 그 당시는 일본인이 1,000명이나 와서 벌채하였다고 한다.
1987년에 苧浦에서 일본인이 島監의 허가를 받아 1그루를 벌채하여 2500才가 넘는 板材를 일본에 수송하였고, 한인이(北浦에서 벌채) 벌채하여 3000才의 판재를 일본에 수송했다.
1899년에는 28그루를 일본인이 벌채하여 10만 여 才의 판재를 일본에 수송하였다. 이 가격은 재목 하나에 그 섬에서 7錢으로 하여 7000圓이었다.
1900년에는 한국 정부의 공문에 기초하여 1899년 11월 島民과 이익 분배의 계약을 맺고, 80그루 중에서 56그루를 벌채하여 이미 5만여 才는 일본에 수송했다고 한다.
欅材의 제재비는 1才(1寸角 길이 7尺)에 2錢 5厘로 山床에서 해안까지의 운반비가 2錢 내지 2錢 5厘, 해안에서의 賣價가 7錢이라고 하면 2錢의 이익이 된다. 일본까지의 운임은 대략 2錢이다.
黐皮로서 끈끈이를 만들어 일본에 수송한 것은 모두 7500貫으로 이 값은 3400圓이다. 연도별은 아래와 같다.
1897년 2500貫 이 값은 1000圓이다. (10貫에 4圓) 1898년 3천貫 이 값은 1200圓(10貫에 4圓)1899년 1500貫 이 값은 900圓(10貫에 6圓) 1900년 500貫 이 값은 300圓(10貫에 6圓)이다.
欝陵島立木見込調表
樹 種높 이그루 수摘 要

3尺이상
6尺未滿
16,335全林에 點在해 있으나 牛腸洞 南陽洞 黃土九味 등의 谿筋에 비교적 많으며 3尺이상 6尺미만은 4척 정도가 가장 많고, 6척이상 1장 5척은 8~9척이 많으며 속이 썩은 것도 적지 않다. 대개 재목으로 쓸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6尺이상
1丈5尺
165
3尺이상
6尺未滿
14,666全林에 퍼져 있으나 봉우리에 가장 많고 성장이 좋아 굽은 것은 보기 드물다.
일본 수종에 비해 재질이 나빠 마치 일본의 白樅과 비슷하다.
6尺이상
1丈3尺
7,734
山毛欅3尺이상
1丈5尺
275,0008~9尺으로부터 1丈이 넘는 것도 많다.
단 풍3尺이상
1丈5五
55,000일본의 숫 단풍으로 5~6尺이 가장 많다.
3尺이상
8 尺
550일본종과 다르지 않다.
덴보나시3尺이상
9 尺
1,100同 上
다 부3尺이상
1 丈
55,000同 上
오오바구3尺이상
5 尺
1,000同 上
五葉松3尺이상
9 尺
550同 上
백 단3尺이상
4 尺
5,500향기가 적고 열대지와는 달리 향목으로서의 수요가 없을 것임
椿3尺이상
4 尺
55,000일본종과 다르지 않다.
3尺이상
9 尺
550同 上
모 치3尺이상
7 尺
5,500同 上
3尺이상
9 尺
5,500同 上
아라라기3尺이상
5 尺
2,750同 上
501,600 
備考
一. 本表는 눈짐작 총 면적 9331 町 2反步로 가정하여 그 중 2332町 8反步는 나무가 없는 곳, 즉 畑地 및 불모지와 기타이고, 나머지 6998町 4反步의 산림지 중 계곡 및 암석이 차지하는 면적 1498町 4反步를 뺀 나머지 全殘5500町步를 樹林으로 보고 대략 전체의 10분의 1을 조사한 눈짐작 결과에 따라 立木이 예상되는 나무를 정한 것이다.
本表의 立木 總數는 눈높이 3尺 이상의 것으로 50만 1600그루이지만 前項의 査定法으로 겨우 4일 동안 조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애당초 정밀하지 않다.

鬱陵島 調査 槪況
第1. 位置와 地勢
울릉도는 부산과의 거리가 180마일, 원산과의 거리 180마일, 일본의 隱岐에서는 140里 떨어진 해안에 고립된 島嶼로, 둘레가 모두 10리이며 섬 전체가 모두 암석으로 된 크고 작은 산으로 되어 있다. 무수한 계곡이 그 사이에 있고, 산 정상에서 계곡까지 울창한 수목이 덮여 있어 매우 장관이다. 연안 일대는 모두 깎아지른 절벽으로 항만은 거의 없어 풍랑이 있으면 선박이 피난할 길이 없다. 겨우 道洞이라고 칭하는 곳에 절벽 사이에 아주 좁은 하나의 작은 항구가 있다. 일본의 風帆船 200石積 이하의 것이 이곳에 와서 정박한다고 해도 풍랑을 막기에는 부족하므로 모두 육지로 철수한다. 따라서 기선처럼 穩波를 할 수 없는 배가 이 섬에 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러한 상태이므로 원산, 부산, 또는 일본의 境 또는 馬關 등지가 이 섬에 가장 근접한 곳이지만 舟揖의 왕래가 적어 이른바 절해의 고도이다. 육상의 교통도 많은 山谷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거의 도로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려면 매우 곤란하다.
第2. 産物
해산물로는 若布, 天草, 鮑魚의 종류로 그 산출량은 별로 많지 않다. 어업은 해저가 깊고 또 암석이 많기 때문에 전혀 가망이 없다.
농산물로는 콩, 보리 및 감자 등이다. 그러나 온 섬이 산이라 전혀 평지가 없기 때문에 도민은 산의 중턱에 밭을 일궈 종자를 심는다. 밭의 면적은 별로 넓지 않아도 이미 개간을 다해 한 치의 남은 땅도 없는 듯하다. 대두 산출량은 연평균 대략 5000石이고 그 중 3000石은 주로 일본에 수출한다. 그 값은 일본 시세로 평균 2만 圓정도이다. 보리의 산출량은 그 수량을 자세히 산출하기 어려우나 島民 2500여 명의 常食用으로 공급하고 남는 것은 거의 없고 겨우 100石 내지 150石을 수출한다.
감자는 島民의 부식으로 쓰이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다. 임산물은 실로 울릉도를 값지게 하는 것으로 중요한 수목으로는 槻木, 白檀, 부나, 다부, 黐, 桑 등이다.
槻木은 그 질이 매우 좋아 일본에서는 그 비슷한 것을 보기 힘들지만 값나가는 것은 이미 거의 벌채되었다. 6丈 이상 1丈 5尺 이하의 것으로 현존하는 것은 겨우 150그루 정도이다. 그 중 9尺 내외의 것이 가장 많다. 그 제재에 적합한 것은 그 중 3분의 1이 좀 못 된다. 3尺 이상 6尺 이하의 것은 그 수가 적지 않으나 작으므로 값이 싸다. 요컨대 앞으로는 별로 전망이 없다.
白檀이라는 것은 인도 지방에서 자라는 것과는 달리 향기가 적어 진짜 백단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값이 싼 데다 절벽 위에 있기 때문에 벌채가 곤란하다. 수량은 꽤 있는 모양이다.
栂는 그 수가 매우 많고 또 크지만 나무질이 좋지 않아 목재로서의 가치는 없다.
黐은 이전에는 많았으나 요즘에는 다 베어서 적다. 질은 상등이다. 기타는 생략한다.
第3. 輸出入
중요한 수출품은 槻木材는 별도로 하고 大豆, 麥, 胡太, 鮑, 天草, 黐 등이다.
1897년부터 1900년 3년간의 평균 수출고를 일본 시세로 나타내면 일년 평균
大豆 2만圓 한인이 산출한 것
胡太 770圓
960圓
2960圓 일본인이 가지고
온 것
天草 1200圓
6000圓
合計 3만 160圓
수입품은 綾木綿과 金巾綿 기타 飮食用品으로 1898년 및 1899년의 평균 수입고 7000圓 내외이다.
수입품은 섬에 있는 일본인의 수요에 공급하는 외에 한인의 大豆, 胡太, 麥 等과 교환한다.
수입품 하역지 및 목적지는 섬은 道洞, 일본은 境, 馬關, 鶴賀, 濱田 등으로 境이 그 70퍼센트를 차지한다.
第4. 島治
島民은 호수가 520여 가구, 인구 2500여 명. 島監이라는 자가 島治를 한다. 도감 밑에 각 촌마다 촌장이 있어 마을의 모든 역할을 담당한다. 도감의 관청은 지금은 道洞이라는 곳에 있는데 지금의 도감은 裵季周라고 한다. 한국 정부로부터는 한 푼의 봉급도 없고 도민이나 기타에게서도 수입이 적기 때문에 가난하여 세력이 없다. 게다가 권력이 없기 때문에 도민의 대부분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므로 치적도 올리지 못한다. 도민 상호간은 이웃간에 서로 친하며 공동생활의 질서를 잘 지키고 있다. 裵 도감은 일본에 세 번 온 일이 있어 일본어를 조금은 이해하므로 일본인을 위해서는 매우 편리하지만 일본에서의 槻木材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항상 직접 벌채하여 일본인 한 사람과 결탁하여 이익을 독점하려 한다. 작년 이후로 그가 한국 조정에다 일본인 槻木 도벌 운운하여 보고하고 또 도민이 槻木을 지키는 것을 생명과 같이 한다고 한 말 등은 모두 이런 배짱에서 나온 말이다. 도민은 槻木의 가격도 모르며 산에서는 이것을 薪炭用으로 벌목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도감과 일본인 사이의 감정은 좋지 않다.
第5. 섬의 日本人
울릉도에 있는 일본인은 주로 島根縣 사람이다. 그 수는 때에 따라 증감이 있어 일정하지 않다. 현재의 수는 100명 안팎이다.
섬에 있는 일본인의 말을 들으면 일본인이 처음으로 그 섬에 간 것은 1891년으로 黐을 제조하기 위해서 7명이 도항하여 간 것이 시초라 한다. 그 후 계속하여 갔으나 1892년부터 1895년까지는 확실하지 않고 1896년 이후 200명 내외가 있었다. 주로 櫸木 벌채자 및 그 부속원이었다. 지금 섬에 있는 100명은 일본에서 원산 또는 부산을 향해서 도항하던 도중에 날씨 때문에 기항한 자 또는 일부러 섬에 온 사람들인데 선박의 出港免狀 및 旅券은 대부분 원산 내지 부산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道洞이라는 마을 중심으로 모여 있고 그 외의 각지에 산재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조합을 만들어 幹事를 두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島監 裵季周을 그다지 敬服하지 않는 듯하나 특별히 난폭하게 굴지도 않는다. 특히 前 幹事인 片岡吉兵衛라는 자 및 현 幹事인 松本繁榮과는 잘 지내는 모양이다.
도민들과는 매우 감정이 좋다. 도민은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편의를 받고 있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도민의 옷감인 綾木綿 金巾綿 등은 모두 일본인의 수입에 의존한다. 본국과의 왕래는 모두 日本形 風帆船에 의존하는데 현재 寄港 중인 것 11艘을 보았다. 평균 100石積 내외이다. 항구도 없으며 풍랑이 높아 왕래가 매우 드물다.
第6. 鬱陵島에 대한 장래의 전망
前述한 바와 같이 해산물은 전망이 좋지 않다. 최근에 鮑와 天草가 크게 그 수량이 감소된 모양이나 일본인의 말을 들으면, ‘器械船 1척 이상은 전망이 없으며 농산물은 대두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전망이 없다. 이것도 겨우 1년 수출액 3000石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그 산출량이 증가할 가망은 없다. 가장 유망하다고 보는 산림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槻木은 이미 6尺 이상의 것은 다 베어내고 현존하는 것은 200그루가 채 안 된다. 더구나 그 중에 속이 썩어 제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재목 켜는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마 내년 중에 다 베어질 것이라고 한다.
栂는 수도 많고 크지만 樹質이 상등이 아니며 그 외의 것은 가치 있는 물건으로 치기가 어렵다.
이상과 같이 울릉도는 앞으로 그리 유망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현재 섬에 있는 일본인을 돌아가게 만들고 또한 앞으로 入島를 금지하더라도 손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 일년간 이 섬의 일본인 문제를 미결로 두어도 지장 없게 할 방법이 있다면 槻木이 대체로 다 베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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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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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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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공사관기록·통감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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